이연정 문화부 기자
하늘이 높고 청명한 바람이 불어오는 10, 11월은 '문화예술의 달'이다. 이 좋은 날을 놓칠세라 지역 곳곳에서 축제와 전시·공연이 쏟아진다. 지난 한 달 대구에서 진행된 전시와 공연을 세어 보니 300개가 훌쩍 넘었다.
그만큼 현장을 찾을 일이 더욱 많아졌고, 그곳에서 만난 예술인들의 얘기를 들을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과의 대화 대부분은 "요즘 대구 예술계가 큰일입니다"로 시작해 "답이 보이지 않네요"라는 한숨 섞인 말로 끝나고 말았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그들에게 최근 몇 년은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암담한 시기가 됐다. 한국 근대예술의 태동지라는 과거의 자부심도, 앞으로의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미래의 기대감도 시들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구의 문화예술 관련 예산은 2년 연속 삭감된 데서 내년에 또 깎일 예정이다. 예술인들의 활동 무대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이제는 지역 문화예술의 뿌리를 만들고 그 전통을 이어 온 행사들의 명맥마저 위태로운 수준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은 가장 먼저 깎이고 가장 늦게 채워진다. 경제, 사회 분야에 비해 그 효과가 직접적으로 체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은 돈 안 되는 것, 여유 있는 사람이나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도 한몫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예술은 우리 삶에 있어 왜 중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는 현실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라서다.
훨씬 깊이 있고 분석적인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예술은 최근 사회적으로 결여된 공감과 위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작품을 보며 그것을 창작한 이의 입장이 돼서 생각하고 다양한 상황과 환경을 이해해 보기도 하며, 작품을 통해 새로운 감정을 느끼거나 예전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며 공감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은 공감 능력은 사회의 안정성을 탄탄하게 받치는 영양분이 된다.
즉 불안정한 관계가 늘고 유대감이 메말라 가는 시대에 예술은 사라져 가는 인간성을 다시 찾게 한다. 세계 곳곳에 남겨진 예술 작품들이 수백 년을 뛰어넘어 감동을 안겨 주는 것도, 예술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예술의 중요성은 곧 예술인의 존재 이유가 된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 가며 잃어 가는 그 중요한 무엇들을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이들이기 때문.
연기자 겸 화가 박신양과 철학자 김동훈이 쓴 책 '제4의 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예술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바쁜 삶에 쫓기느라 살펴보지 못하는 문제들을 대신해 애써 들여다보는 사람들이다. 그것의 대부분은 아마도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에 해당할 수도 있고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설명하지 못한 채로 부여잡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중략) 사람들이 별로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평생의 노력과 뚝심을 바친 많은 예술가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된다."
그러니 그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당장 도움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예술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예술은 아주 조금씩 사람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킨다. 지역 예술인들의 한숨이 그치고 희망적인 미래를 얘기하는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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