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허기를 채운다는 건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이 포함된다. 멈추지 않는 지속을 위한 준비와도 같아서 육신의 에너지 외에 정신을 받쳐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배고픔을 채운 후 든든하게 떠받드는 이 기분은 뭐랄까. 마치 양식을 비축해 두는 것처럼 안정감을 느끼게 하지만, 반대로 끼니를 거르면 온 기운이 빠져나가는 심정이 되곤 한다.
밥 한 끼로 심신을 채워 아침을 세운다. 변변찮은 찬이라도 뜨끈한 밥 한 공기면 온몸이 데워지는 마법의 불씨 같다. 어릴 적 솥단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밥 향은 식욕을 돋웠다. 새벽부터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정성껏 불 조절하며 가족의 끼니를 준비하셨다. 밥 짓는 소리에 모두가 잠에서 깨면 밥 내음에 이끌려 밥상에 둘러앉았다. 마치 새날을 맞는 의식을 펼치듯 그렇게 하루를 열었다.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의 작업화가 제일 먼저 자리를 뜨면 다음으로 오빠와 언니들 운동화가 서둘러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막내였던 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돌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이 모든 상황을 할머니께서는 대청마루에 앉아서 속을 채워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환하게 동이 튼 후에야 할머니와 어머니 곁에 앉아 밥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 내게는 언제나 노릇하게 눌린 누룽지 한 뭉치가 덤으로 주어졌다.
집밥의 의미는 집을 나서는 이를 향한 응원이고 격려다. 식사로 자신을 성원하며 최고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과 같다. 어떤 면에서는 먹는다는 거 이상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내어준 사람의 정성이 힘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식재료가 달라지고 음식 온도나 조리법을 바꿔 몸을 조절하기도 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 속에서 자신에게 바른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 역시 일상에서 나를 세워가는 방법의 하나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눈만 뜨면 세상을 향해 나가기에 급급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끼니를 챙겨야 하는데 간편식마저 스쳐 지날 때가 흔하다. 매일 걷고 또 걸으며 앞을 향하면서도 때론 생각지 못한 좌절에 밥맛을 잃기도 한다. 간혹 뜻한 일이 순조로울 때면 기분 좋게 밥 한 숟갈을 뜬다. 매일 섭취하는 밥심의 위력은 보이지 않는 내일을 위한 노력처럼 중요한 순간에 최선의 몰입을 높인다. 다음을 기약하려면 허기를 채워야 한다.
지난 아침의 의식에는 밥 한 공기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몇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던 부모님의 손길이 이제야 그립고 이해된다. 어쩌면 그 잔상이 지금껏 내 몸을 휘감으며 하루를 뜨겁게 타오르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침을 비우고 점심을 건너 저녁을 그냥 잠재우면 이대로 멈출 수 있다. 해가 지면 새날이 오듯, 지속하고 싶다면 속을 채워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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