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아내 가정폭력·외도로 이혼 후 심장병까지…"아이들 어쩌나"

입력 2024-10-22 06:30:00 수정 2024-10-22 09:19:03

열심히 일해 모은 돈, 부동산 사기로 날리고 빚까지 져
양친까지 갑작스레 세상 떠나고 1년간 폐인 생활
빚 갚고 결혼했지만…배우자 가정폭력·외도로 이혼
지난해 심장병으로 심정지…"아이들 곁에 오래 있고 싶어"

심장병을 앓는 오지훈(53·가명) 씨가 해맑게 장난치며 노는 두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 김지효 기자
심장병을 앓는 오지훈(53·가명) 씨가 해맑게 장난치며 노는 두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 김지효 기자

자꾸만 시련이 불어 닥친다. 믿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고 죽음의 문턱에서 몇 번이고 살아 돌아오기도 했지만, 사는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혼 후 두 아이를 책임지게 된 오지훈(53·가명) 씨가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다. 지난해 한 번 멎었던 심장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만이라도 버텨 주기를. 그렇게 무사히 심장 수술을 받고, 아이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부동산 사기 당한 후…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지훈 씨는 대구 달성군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성서산단 근처에서 장사를 하던 어머니 덕에 가정 형편은 나쁘지 않았다. 지훈 씨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기술을 배웠고, 졸업 후에는 바로 건설업종에 취직해 현장 일을 했다. 그러다 전문대학교에 진학해 건축 공부를 했다. 과 대표와 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교생활을 열심히 한 끝에, 그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번듯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대기업 파견직으로 일하게 된 지훈 씨는 자신 앞에 탄탄대로만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입사한 지 1년 뒤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또 3년 뒤에는 부동산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잃고 수억원대 빚을 지게 됐다.

통장을 압류당했고 다른 독촉장이 자꾸 날아왔다. 지훈 씨는 마음이 괴로워 매일 퇴근하면 술로 현실도피를 했다. 망가진 지훈 씨를 두고 볼 수만은 없던 어머니는 식당 장사를 하는 큰딸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 하지만 지훈 씨의 큰누나는 어머니와 크게 다퉜고, 그 자리에서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

지훈 씨는 그로부터 1년을 꼬박 폐인처럼 보냈다. 직장이 있어도 빚 때문에 형편이 어렵다 보니 친구들에게 자꾸 손을 벌리게 되고 민폐를 끼치게 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자꾸 술을 마셨다. 살이 찌며 허리디스크가 왔다.

몸과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지훈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전국을 떠돌며 수개월간 객지 생활을 하던 지훈 씨는, 어느 강가에서 세찬 물살을 바라보다 다시 예전 삶으로 돌아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후 지훈 씨는 경북의 한 방산 하도급 업체에 취직해 돈을 벌면서 개인회생 신청을 했고, 착실하게 일한 결과 30대 중반에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배우자 가정폭력·외도로 이혼…심장병으로 고생하며 두 아이 키워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바쁘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외로움이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캄보디아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다.

내 가정이 생긴다는 생각에 기뻤던 것도 잠시, 지훈 씨는 갑작스레 발병한 손목터널증후군 때문에 또 한 번의 좌절을 겪게 됐다. 지훈 씨가 손에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자 회사는 병가를 내게 해주는 대신 그를 한직에 앉혔다. 결국 공장장과 싸우고 회사를 나온 지훈 씨는 공공근로를 전전하다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형편이 어려워진 그즈음부터 배우자는 지훈 씨의 능력과 경제적 상황을 다른 사람들과 자꾸 비교했고, 그 때문에 부부는 자주 싸웠다.

지훈 씨에게 종종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머리채를 잡는 등 폭력을 행사하던 배우자는 지훈 씨가 없는 사이 아이들에게까지 손찌검 등 학대행위를 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한 지훈 씨는 절대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배우자를 설득하려 했지만,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배우자는 외도를 일삼다가 임신까지 했다. 지훈 씨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6년여 전,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였다.

이혼 후, 아이들을 혼자 기르던 지훈 씨는 또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일을 하다 숨이 안 쉬어져 병원에 찾아간 뒤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는 심장병을 진단받은 것.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안 쉬어지고 어지러운 증세가 반복됐다.

비만과 당뇨, 혈압 이상, 심장병이 겹치며 직장생활이 불가능해졌고,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러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병원에 실려간 지훈 씨는 심정지 상태를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는 아버지 생사를 걱정하느라 매일 밤 방문을 열어보는 첫째 아들을 보며, 아이들과 "둘째가 중학교 2학년이 되는 5년 뒤까지 건강하게 몸관리 해서 심장 수술을 받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금도 그는 언제 숨이 멎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며, 어려운 형편에도 아이들을 위해 버티고 있다. 월세와 대출이자는 20여만원, 강박증과 ADHD를 앓는 아이들 영양제와 약값, 식비로는 100만원 가까이가 나가고, 통신비 등 공과금도 30만원, 학원비 50여만원, 개인적으로 갚아야 할 2천만원의 빚까지 틈틈이 갚다 보면 월 200만원 상당의 기초생활수급비는 항상 모자라다. 모아둔 재산은 없고, 친지들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아이들이 내 유일한 삶의 목표"라는 지훈 씨는 그저 두 아이가 더는 그늘 없이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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