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갖추는 여유 시간 거의 안나오는 교육 구조
"내년도 들어와도 끌어줄 선배 없으면 교육 안 돼"
지역 의대 본과 2학년 학생인 A씨는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학업을 쉬어도 괜찮느냐", "내년에는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 대답하기가 힘들다. 동맹휴학의 원인이 됐던 의대 증원에 대해 정부가 "내년도 증원은 취소하기 어렵다"고 하니 돌아갈 명분이 없는데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정부가 증원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지금 의대생들이 내년에도 복학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내년에 들어오는 신입생들도 분명히 자신들이 교육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교육받을 거라는 걸 알면 우리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도 의대 증원을 절대 수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내비치면서 의대 교육의 파행도 지속되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이같은 흐름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며 내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들 또한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18일 지역 의료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의료계는 내년도에 늘어난 의대 정원에 맞춰 신입생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 신입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의대 교육이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대학 내 다른 학과와 달리 1학년 수업을 듣지 않으면 2학년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내년 예과 1학년만 최대 150명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들을 모두 교육시킬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대학이 없다는 게 지역 의료계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 17일 경북대 국정감사 등을 통해서도 사실임이 일부 드러났다.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이 경북대 의대의 낙후된 시설을 보고 개선이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 묻자 홍원화 당시 경북대 총장은 "경북대가 40대 의대 중 유일하게 해부학 실습을 두 개 반으로 나눠서 실험실습을 하고 있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졌다"며 "의대에서 요청이 없었던 게 컸다"고 말해 참석한 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출신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도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본과 4학년 시절,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며 도서관 에어컨과 전등을 끄고 공부하던 학생을 쫓아내던 학교가 경북대"라며 "실습 기자재가 부족해 일회용품을 재사용하라고 지시하던 학교다. 수술용 실 하나를 받아 너덜너덜해진 모형 위에 아끼고 아껴가며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경북대 교수 출신의 한 개원의는 "예전에는 예과 학생들은 문리대 혹은 자연대 소속이어서 경북대 산격동 캠퍼스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요즘은 예과도 의대 소속이고 임상 교육이 강화되면서 예과 학생들도 동인동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내년도 신입생이 예과 2년 동안 시설확충을 위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시설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내년에 들어오는 신입생들도 입학하게 되면 의대 학생 사회에도 들어오게 된다. 신입생의 입장에서 선배들의 분위기에 저항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고, 결국 의대 학생들의 수업 파행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지역 의료계의 예측이다.
의대생을 자녀로 둔 대구 시내 한 개원의는 "정부가 내년도 신입생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수업을 들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의대 수업 대부분은 선배가 어느정도 끌어주지 않으면 손도 못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정부가 버티는 건 의대 학생들의 사회 구조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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