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미래를 위한 고언(苦言)] "필수의료 '낙수' 취급에 많은 상처…'뉴 노멀' 대비할 필요"

입력 2024-10-09 15:52:22 수정 2024-10-09 22:14:11

2. 박남희 전 계명대동산병원장

박남희 강심내과 원장(전 계명대동산병원 병원장). 이화섭 기자.
박남희 강심내과 원장(전 계명대동산병원 병원장). 이화섭 기자.

올해 1월까지 계명대동산병원장을 역임한 박남희 강심내과 원장은 2017년 대구경북에서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했고, 2020년 대구경북 최초로 심장과 신장을 동시에 이식하는 고난도 수술에 성공한 심장혈관흉부외과의사다.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나기 전까지 수련병원의 병원장으로 일해오던 박 원장에게 지금의 의료상황은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형국'으로 비춰졌다.

- 정부가 말하는 '중증필수의료' 분야에 30년 가까이 몸담고 있었는데 필수의료 분야에 인력난이 생긴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 결국 필수의료 분야가 일자리 측면에서는 양질의 일자리로서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공의들이 필수의료를 택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수련 과정에서 선배 의사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 비전에 대한 여러가지 고민이 오고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흉부외과만 하더라도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의 진료분야지만 대학병원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

- 이런 부분들이 지역의료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인가?

▶ 약 10년 전에 대구시와 지역 의료계가 대구에 '지역심장수술센터'를 만들자고 추진한 적이 있다. 지역의 고난이도 심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모아서 치료할 수 있는 곳을 만든다면 환자들은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서 좋고, 지역 의료인들은 많은 수술 사례와 연구를 통해 지역의 중증 심장 질환 치료를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타당성 조사에서 밀려 좌초됐다. 그렇게 10년 동안 지역의 환자들은 서울로 갔고 지역의료는 간판만 걸어둔 채 유지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 정부에서는 계약형 필수의사제 등을 통해 지역에 의사들을 유치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성공할 것이라 보는가?

▶ 필수의료 분야는 결국 환자를 많이 보지 않으면 실력이 늘 수 없다. 필수의료 분야를 갖춘다고 의사를 모셔왔다 쳐도 이 의사가 중증 치료를 할 수 있을까? 이 의사도 중증 사례를 거의 다뤄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증상을 다뤄본 경험이 많은 병원에 환자를 보낼 수밖에 없다. 치료하지 못하는 의사는 결국 그 정체성이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못 가는 거다.

- 의료공백 초반에 국민들은 '정부가 의사를 늘리면 필수의료 분야도 결국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 소위 '낙수효과'가 발생해서 필수의료 분야도 해결될 것이라는 게 정부 논리인데, 여기에 많은 필수의료 의사들이 상처받았다. 왜냐면, 필수의료 분야는 생명에 직결된 부분이기에 의료 분야 중에서도 정말 고도의 능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자부심도 있는데, 이를 '밀려서 가면 되는 분야'라고 치부해버리니 그 자부심에 상처를 크게 받았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발전하려면 제대로 된 보상과 의료인으로써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근무 여건, 그리고 미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책이 필요한데, 지금 정책은 의료 분야에 대한 정부의 몰이해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어찌됐든 의료공백 사태는 해결돼야 할 텐데 해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 아무리 고민해도 의료공백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이미 물리적으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 정부든 의료계든 이제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질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일수도 있다. 이 사태를 수습할 새로운 사람을 보건복지부 장·차관으로 앉히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