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別味)를 맛보는 일은 일탈(逸脫)이다. 이는 권태와 일상에서 벗어남이다. 여행처럼 설레고, 연애처럼 짜릿하다. 대구 동구 불로동의 소문난 묵집에는 그런 별미가 있다. 그 음식의 생김새는 오묘하다. 묵채가 아닌데 묵이 들었고, 김치와 돼지고기가 들었지만 김치찌개나 돼지찌개도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잡탕'으로 여길 것이다.
그 음식은 '태평추'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다. 음식의 몰골은 서민적(庶民的)인데, 이름은 관념적(觀念的)이다. 유래가 궁금해진다.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를 참기름으로 볶다가 김치, 대파를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인 다음 메밀묵, 대파, 당근, 황백 지단을 돌려 담아 더 끓여 간장으로 간을 하고 구운 김을 올린 것이다. 태평초, 묵두루치기라고도 한다."('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
태평추는 경북 북부, 특히 예천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다. 어떻게 태평추라고 불리게 됐는지 불분명하다. 조선시대 궁중 음식인 탕평채(蕩平菜)와 비슷해서 태평추가 됐다는 설이 있다. 탕평채의 재료는 청포묵, 소고기, 미나리, 김 등이다. 태평추와 탕평채는 재료나 이름이 엇비슷하다. 백성들이 탕평채란 이름을 태평추로 풍자했거나(혹은 잘못 알았거나), 탕평채를 흉내 내서 태평추를 만들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탕평'(蕩平)은 위정자들의 지향이며, '태평'(太平)은 백성들의 소망이었으니.
탕평채는 영조의 탕평책(蕩平策)을 상징한다. 온갖 재료를 한데 섞은 탕평채는 당쟁(黨爭)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과 닮았다.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1855년 간행)에는 영조 때 좌의정 송인명이 탕평채 파는 소리를 듣고 탕평 사업을 추진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는 태평추가 혹시 귀한 궁중 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하나 세상은 줄곧 탕탕평평(蕩蕩平平)하지 않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탕평해야 태평한 것인데,/ 세상은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기울기 일쑤였고 그리하여 탕평채도 태평추도 먹어 보지 못하고/ 나는 젊은 날을 떠나보내야 했다." 예천 출신 시인 안도현의 시, '예천 태평추'의 부분이다. 나라가 정쟁(政爭)으로 편한 날이 없다. 정치인에겐 탕평채를, 서민들에겐 태평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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