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손바닥과 손등

입력 2024-09-26 14:17:07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김미옥 수필가
김미옥 수필가

특별한 날, 한번 즈음 손을 잡아본 사람을 만난다. 악수로 인사를 나눴건 오랜 친분으로 정이 두터운 사이건 손을 맞잡은 마음은 만남의 의미를 크게 북돋운다. 같은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고 웃음을 전하며 대화로 공감하고 보듬는 시간을 보낸다. 집안 행사여도 좋고 누군가의 결혼식 피로연이나 웃어른의 장례식장이어도 기꺼이 손을 내밀어 관계를 이어간다.

산다는 건 손으로 만지고 그 촉감의 경험을 쌓아가는 거다. 갓난아이가 어머니 살갗을 쓰다듬으며 포근하게 잠들던 기억이라든가, 힘들고 지친 하루 끝에 부드러운 이불과 베개에 얼굴이 맞닿으면 맘 편히 휴식할 수 있었던 순간, 이외에도 손끝에 닿는 블라우스의 감촉이나 고운 밀가루 반죽과 찹쌀떡의 첫 만남은 말랑하고 폭신한 솜털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껏 손바닥으로 만져서 알고 느끼며 일상을 넓혀왔다.

첫 아이를 얻은 날, 손으로 받쳐 든 어린 살갗의 보드라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두 손을 잡고 걸음마를 익히며 손을 이끌어 새로운 기회를 넓혀 줬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손바닥은 굳은살이 박이도록 일했고 손등이 견디게 받쳐줬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엎치락뒤치락 사춘기 속 혼란은 나를 외면하거나 거친 말투와 함께 방문이 닫혔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며 다시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오래전 일이다. 집안 행사에 온 가족이 모였고 산해진미가 펼쳐졌다.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던 얼굴을 만나면 보자마자 손바닥을 마주 쳐가며 반가움을 전했다. 과묵하셨던 아버지조차 미소를 띠며 두툼하고 거친 손을 뻗어 외손자와 외손녀를 안아주셨다. 서로 웃으며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보드라운 면만 함께하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아들만 우선시한다고 불만을 말하면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반문이 터지기 일쑤였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가 원망과 불평이 뒤섞여 서로 맞잡았던 손바닥은 등을 돌려 거칠게 숨을 내뿜었다.

손잡은 이들은 특별한 시간에 하나로 모인다.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서로 손바닥을 겹쳐 인사를 나누지만 사실 손등이 부딪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알고 지낸 시간이 길었던 탓일까 아니면 그동안 서로의 속사정을 많이 알아 버렸기 때문일까. 때로 표면을 감추고 의견을 대립하기도 하지만 손바닥은 손등과 함께여서 온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손바닥과 손등은 우리의 관계를 비춘다. 속살의 부드러움과 견고한 손등이 서로를 견디게 한다. 좋을 수만도 없고 늘 나쁘지도 않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손바닥을 받쳐줄 손등의 역할을 이해하며 오늘도 손을 내밀어 인생의 깊이를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