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대구, 간송미술관

입력 2024-09-24 09:49:37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약 10년간의 기다림 끝에 2024년 9월 3일, 대구 간송미술관이 개관했다. 간송미술관의 분관이 대구에 유치될지 모른다는 아득한 기대감이 긴 세월과 노력들을 거쳐 현실로 이뤄 진 것이다. 많은 이들의 기대만큼 열띤 관심으로 가장 복잡했을 개관일이 지난 이후 전시장을 찾았다. 그간 대구의 문화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해온 대구미술관의 바로 옆자리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으로 들어서는 길은 고요했다. 안동 도산서원의 형태와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된 건물의 외관은 우뚝 선 나무 기둥들로 웅장한 분위기와 그 너머로 넓게 펼쳐져 보이는 대구의 풍경이 더해져 전시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관람객의 마음을 가다듬도록 유도한다.

전시장은 평일 오후의 시간임에도 입장 대기가 있어 끊이지 않는 간송미술관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만 입구의 안내판을 통해 전시실마다 이용 가능 인원과 혼잡도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 관람 동선을 짜기에 편리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단독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제2전시실이 단연 붐비고 있어 제1전시실부터 살펴봤다. 회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1전시실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품은 신윤복의 풍속도였다. 미술과 문화에 각별한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한 번쯤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그림들이 말끔한 컨디션으로 전시실 중앙에 위치해있다. 각 작품마다 캡션뿐 아니라 간략한 작품의 설명들이 덧붙어 있어 관람객들은 작품의 설명에 따라 더 꼼꼼히 작품들을 눈에 담아본다.

제2전시실은 단 한 점의 작품, 신윤복의 미인도를 만나보는 단독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좁은 통로의 복도가 나오고,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조명의 넓지 않은 공간에 작품 미인도가 홀로 빛나며 관람객을 기다린다. 작품 속 여인과 독대하는 듯한 전시실 구성이 인상 깊었으나, 실제로는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어둡고 좁은 공간에 다수의 관람객이 모여 있어 제대로 작품을 관람하기가 힘든 점이 아쉬웠다. 보다 더 한적한 시간에, 잘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그림 속의 여인과 홀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제3전시실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와 그것을 낭송하는 목소리들을 만나볼 수 있고, 4전시실에서는 서예, 도자, 불교미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다른 전시실보다 특히 더 어두운 조도를 유지하던 4전시실의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은은한 사운드와 집중도 높은 조명으로 인해 무중력의 상태에서 보물들을 만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전시실인 5전시실에서는 반원형 스크린에 보물들을 모티브로 제작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스크린의 규모가 웅장해 관람객을 압도한다. 공간과 어우러지는 곡선형의 좌석들까지 더해져 화면으로 만나보는 보물들의 이미지와 그것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모습까지 한 폭의 작품 같은 공간이었다.

'여세동보(與世同寶) - 세상 함께 보배 삼아'전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온 대구 간송미술관의 개관전 답게 국가가 지정한 수많은 국보와 보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귀한 전시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하는 대구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해있어 각자 다른 시대의 문화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대규모 문화시설이 대구에 자리했다는 점이다. 이제 대구는 전국이 부러워할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갖게 됐다. 이것이 곧 대구의 경쟁력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대구의 여타 문화시설에까지 긍정적인 영향력을 뻗칠 수 있길 바라며 간송미술관에 막중한 임무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