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마티에르 두드러진 선(線)에 담은 생명의 아름다움

입력 2024-08-31 20:22:45 수정 2024-09-01 18:19:23

재불화가 금영숙 18회 개인전
9월 11일까지 갤러리인슈바빙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금영숙 작가.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금영숙 작가. 이연정 기자

갤러리 인슈바빙에 전시된 금영숙 작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갤러리 인슈바빙에 전시된 금영숙 작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한국의 대표 근대 화가 이인성과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금경연(1915~1948) 화백. 그는 전국의 수재들이 몰리는 대구사범학교 심상과에 1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문수학했고, 17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는 등 어릴 적부터 뛰어난 예술 실력을 보였다. 특히 1939년 안동 성소병원을 소재로 그린 '붉은 건물'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안동, 경산, 경주 등에서 미술 교사로 활동해온 그는 한국에 서양화를 도입한 선각자이자 요절한 천재 화가로 불린다. 2003년 그의 고향인 경북 영양 수비면에는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의 핏 속에 흐르던 진한 예술의 DNA가 어디 가랴. 금경연 화백의 손녀인 금영숙 화가는 계명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청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파리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딴 뒤 30여 년간 활발한 작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금영숙 화가는 "때로는 할아버지의 무게가 크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재능을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며 "유족으로서 할아버지의 업적을 잘 보존하고 알려나가는 동시에, 화가로서도 좋은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생명과 나무를 주제로 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상처 나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보며 생명의 흔적과 그것이 담고 있는 자연의 미학을 느꼈고, 겹겹이 물감을 쌓아나간 선(線)들의 마티에르를 통해 한 생명이 창조되고 존속하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

"본질적인 자연의 선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화면 위에 무수히 얽히고 설킨 선들이 간격을 두고 이어지는 게,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 삶의 모습 같기도 했죠."

금영숙 개인전 포스터. 갤러리인슈바빙 제공
금영숙 개인전 포스터. 갤러리인슈바빙 제공

사실 그에게 선은 익숙한 언어다. 10년 넘게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서예를 지도하고 있고, 경북서예가협회 유럽지부 대표도 맡고 있기 때문. 기운생동하는 서예의 획처럼 선 하나에 담긴 생명들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한지를 사용하거나 낙관을 찍는 등 전통 예술의 요소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흰 화선지 위에 검은 먹을 긋는 대신 검푸른 색 물감 위에 흰 선을 그리며, 음양의 반전이자 조화를 담아낸 것도 동양의 미학적 요소다.

그는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나의 정체성, 혹은 내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필연적인 질문이었다"며 "나 자신을 찾다보니 한국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확신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관람객들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간 조형미술이라는 분야 안에서 설치 등 다양한 실험들을 해왔는데, 이제 생명과 나무라는 주제를 선으로 표현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 담긴 나뭇가지들을 보며,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으면 합니다."

금 작가의 18번째 개인전은 9월 11일까지 갤러리 인 슈바빙(대구 중구 동덕로 32-1)에서 이어진다. 053-257-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