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멈춤과 버팀의 충돌

입력 2024-08-08 10:02:47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김미옥 수필가
김미옥 수필가

주거니 받거니 맞잡은 줄이 팽팽하다. 당겨도 그대로고 더 세게 힘을 줘도 밀리기만 하는데 이대로 끌려갈 기세다. 주저앉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이에 손아귀에 힘이 모자란다. 놓고 싶은 마음과 물러설 수 없는 의지가 부딪치고 있다.

줄다리기가 한창이었다. 운동장 가운데 굵게 엮인 동아줄의 존재감은 모두를 승부의 세계로 내몰았다. 경기 시작과 함께 줄은 양쪽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한참을 꿈쩍 않는다. 줄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고 마치 줄 위를 타는 아슬아슬한 기분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점점 표정은 굳어지고 지쳐가는 기색이 역력한데, 이즈음 되면 서로를 곁눈질하며 누군가 먼저 포기해 주길 바라는 심정이 된다. 얼마나 끙끙대었는지 손에 힘이 잔뜩 들어 아프기만 하다. 줄을 놓으면 아픔도 멈출 텐데 손으로 잡고만 있다.

원하는 줄을 당기지만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고민이 크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선을 넘을 것 같은데 현실은 쉽게 내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 간당간당해 보이는 일이 정작 꿈쩍도 하지 않으니 속은 갑갑하고 애가 탄다. 손이 벌겋게 달아올라 아픔을 느낄 즈음, 잠시 한 손을 떼어 힘 조절을 하려는 찰나에 전신이 무너질 지경이다. 지금까지 버틴 게 아까워서 내려놓지도 못하고 다시 양손으로 줄을 다잡아 쥔다.

무엇이든 시작은 같아도 과정에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대학원 시절을 떠올리면 곧 성취할 거 같은데 쉽게 잡히지 않을 때마다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진학 시험, 논문 발표, 학위 통과 등의 과제는 늘 긴장시켰고 그나마 나는 운 좋게 그 무게를 털고 나아갔다. 반면에 주위의 몇몇은 부단히 노력했지만 진학이 좌절되거나 시작한 경우에도 이상하게 끝맺음이 순조롭지 않았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실패를 이겨내려 애썼지만 또다시 좌절하자 결국 도전을 멈추고 다른 진로를 향하게 되면서 당시 그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젊은 날에는 물러서는 법을 몰랐기에 도중에 그만두면 자신의 세계가 멈출 거라 여겼다. 있는 힘껏 손아귀에 힘을 주다 보니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치 경직된 채 융통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도전 의식이 커질수록 줄다리기는 더 팽팽해졌고, 힘껏 당겨도 쉽사리 결과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지만 낭패를 당할 때면 이대로 멈출지 그냥 버틸지 망설이기 일쑤였다.

우리는 때때로 지난 실패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뒷걸음치기도 한다. 예전에는 승부에 대한 집념이 강할수록 줄을 붙잡고 부르르 떨었던 적이 있다. 막상 줄다리기를 멈추고도 손바닥에 감도는 얼얼한 기운을 느낀 후, 멈추는 건 버티는 것만큼 힘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그냥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님을 안다. 실제로 지난날 자신의 진로를 바꾼 이들은 지금 사회에서 그들만의 역할을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뒷걸음질은 보기에는 퇴보로 비치기도 하지만 극한 지점에서 만들어 낸 자기 부정의 또 다른 도약을 위해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잡고 있기는 힘겹고 내려놓기는 싫을 때, 잠시 뒷걸음질로 자신을 정돈하면 어떨까. 삶은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만 에너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뒷걸음치며 쏟아내는 노력이 또 다른 힘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