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UFC ‘종합 격투기’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도 있었다

입력 2024-07-31 13:02:28 수정 2024-07-31 17:57:03

B.C 776년 1회 1종목 20초 만에 종료
4두 전차 경주 출전한 네로 황제팀…사고로 완주 못했지만 ‘우승’ 선언
B.C 396년 96회 후 5일간 12종목…2024 파리올림픽 17일간 32개 종목

스타디온 경기 장면. 그리스 도자기 그림. B.C500년. 루브르 박물관
스타디온 경기 장면. 그리스 도자기 그림. B.C500년. 루브르 박물관

2024 파리 하계올림픽이 지난 26일 막을 올렸다. 206개 나라 1만 500명 선수가 오는 11일까지 17일간 32개 종목, 329개 경기에서 자웅을 겨룬다. 문득 궁금하다. 꼭 2800년 전 B.C776년 닻을 올린 올림픽은 며칠간 몇 개 종목 경기로 불을 뿜었을까? 흥미로운 고대 올림픽 경기 속으로 들어간다.

◆ B.C776년 1회 올림픽, 1종목 ①스타디온

B.C 4세기 이후 12개 종목으로 5일간 올림픽을 치렀다. 그렇게 정착되기까지 과정에서 어떤 종목들이 스타디온에 모인 시민들의 환호를 자아냈을까? 이번 올림픽이 열리는 파리 센강변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보자. 가운데 쉴리관 2층으로 가면 그리스 도자기 전시실이 나온다. B.C500년 경 제작된 흑색 인물 기법의 그리스 도자기 한 점을 보자.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3명. 모두 팔을 크게 들어 올려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이 경기종목은 '스타디온(Stadion)'. 1스타디온(약 192m) 거리를 달리는 경기로 현대의 200m 달리기다. 정확히 2800년 전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린 1회 올림픽은 스타디온 단 한 경기만 치렀다. 시쳇말로 싱겁게 끝났다. 눈 깜짝할 새 200m 달렸을 테니, 20여초 만에 대회 종료...

돌리코스 경기장면. 그리스 도자기 그림. B.C5세기. 대영박물관
돌리코스 경기장면. 그리스 도자기 그림. B.C5세기. 대영박물관

◆B.C 724년 14회 ②디아울로스, B.C720년 15회 ③'돌리코스'

B.C724년 14회 대회에 현대의 400m에 해당하는 '디아울로스(Diaulos)'가 추가됐다. 1스타디온 길이에 맞춰 건설된 경기장 스타디온을 오가는 경기다. '디(Di)'는 2, '아울로스(Aulos)'는 관이 2개 달린 피리다. 그러니까, '디아울로스'는 이름 자체에 왕복 의미가 들어간다.

B.C 720년 15회 대회에 '돌리코스(Dolichos)'경기가 나온다. 1스타디온 거리를 20-24번 왕복했으니, 현대로 치면 5000m 달리기다. 런던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도자기 그림을 보면 돌리코스 선수의 양팔은 허리춤에 머문다. 5000m나 되는 거리를 팔을 높이 들고 전력질주 할 수는 없다. 축구에서 3골을 넣으면 해트트릭(Hat-trick)이라고 말한다. 고대 올림픽에서 달리기 3(Tri)종목, 스타디온, 디아울로스, 돌리코스 3관왕을 차지하면 트리아스테스(Triastes)라고 불렀다.

레슬링 경기. B.C5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레슬링 경기. B.C5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B.C 708년 18회 ④레슬링

달리고 마는 멋쩍은 올림픽에 종지부를 찍는다. 상체를 밀거나 잡아당겨 상대를 3번 엉덩방아 찧게 하거나 넘어트리면 승리하는 레슬링이 선을 보였다. 오늘날 그레코 로망(Greco-Roman)레슬링이라고 부른다. 선수들은 머리채를 휘어 잡히지 않게 머리를 짧게 깎거나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경기에 나섰다. 올림픽 본선에는 16명만 참여할 수 있었다. 참가자가 1명뿐이면 그냥 우승했는데, 이 사람을 '아코니테이'라고 불렀다. '먼지 하나 묻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디스코볼로스. B.C5세기 미론 원작. 로마시대 복제품. 로마 팔라조마시모 박물관
디스코볼로스. B.C5세기 미론 원작. 로마시대 복제품. 로마 팔라조마시모 박물관

◆B.C 708년 18회 ⑤5종 경기

레슬링을 시작하던 18회 대회 때 1. 스타디온(단거리 달리기), 2. 원반 던지기, 3. 멀리뛰기 4. 창 던지기 5. 레슬링의 5종경기가 도입됐다. 무대를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국립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으로 옮겨 보자. 그리스 로마 조각 전시실에서 눈에 익은 남성이 반갑게 맞아준다.

디스코볼로스(Diskobolos). 디스코 춤추는 남자? 아니다. 원반(Disk) 던지는 남자다. B.C708년 올림픽 때 도입된 5종경기의 원반던지기 선수다.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원반을 있는 힘껏 멀리 던지는 동작의 이 조각은 B.C5세기 완성된 고전기 그리스 조각의 전형이다.

5종경기 멀리뛰기 준비하는 선수. 손에 할테레스를 들었음. 그리스 도자기 그림. B.C420년-B.C410년. 대영박물관
5종경기 멀리뛰기 준비하는 선수. 손에 할테레스를 들었음. 그리스 도자기 그림. B.C420년-B.C410년. 대영박물관
올림픽 5종경기 선수. 원반과 창을 들고 할테레스는 옆에 걸어둔 모습이다. B.C5세기. 루브르 박물관
올림픽 5종경기 선수. 원반과 창을 들고 할테레스는 옆에 걸어둔 모습이다. B.C5세기. 루브르 박물관

멀리뛰기도 흥미롭다. 멀리서부터 달려와 훌쩍 하늘로 솟아오르는 방식이 아니다. 제자리에서 뛰는데, 양손에 할테레스(Halteres)라는 도구를 든다. 아령처럼 생겼다. 돌이나 납으로 만든 이 할테레스를 들고 앞뒤로 흔들다 펄쩍 뛴다. 이때 리듬을 타라고 아울로스 피리 연주를 곁들였다. 할테레스 평균 무게는 4.5kg 정도였으니 양손에 소고기 7근 반씩을 들고 뛴 셈이다.

피흘리는 권투선수. 로마시대 모자이크. 튀니지 바르도 박물관
피흘리는 권투선수. 로마시대 모자이크. 튀니지 바르도 박물관
권투경기 도자기 그림. B.C336년. 대영박물관
권투경기 도자기 그림. B.C336년. 대영박물관

◆B.C 688년 23회 ⑥권투

지중해 북아프리카 연안의 아름다운 해안 도시 카르타고. 한니발의 카르타고는 오늘날 튀니지 수도 튀니스다. 지구촌에서 가장 큰 로마 모자이크 전문 박물관인 튀니스 바르도 박물관에서 피비린내가 풍긴다. 강타를 얻어맞고 피흘리며 쓰러진 선수 표정이 안쓰럽다. B.C688년 23회 대회 때 도입된 권투는 얼굴 타격을 유효한 공격으로 봤다. 따라서 얼굴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코피 터지고, 볼 터지고, 이빨 부러지고... 현대 권투 선수들은 새도우 복싱, 혼자 경쾌한 스텝 밟으며 자세 다듬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런 연습법을 '스키아마키아'라고 불렀다. 자루에 모래나 밀가루를 넣고 펼치는 가격연습은 '코리코스'. 요즘의 샌드백 연습과 같다. 당시 권투 글러브는 없었다. 대신, 소가죽이나 양가죽 끈을 손에 칭칭 감고 경기에 나섰다.

4두전차 경주 도자기 그림. B.C410년-B.C400년. 대영박물관
4두전차 경주 도자기 그림. B.C410년-B.C400년. 대영박물관

◆B.C 680년 25회 대회 ⑦4두전차경주

그리스 로마 시대 최대의 스펙타클 전차경주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자신의 소유 말이 대회에 나가 우승한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으로 여겼다. 알렉산더의 아빠, 필리포스 2세 역시 자신이 소유한 말이 올림픽에서 우승하자 크게 기뻐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로마 시대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는 한술 더 뜬다.

본인이 직접 전차경주 선수로 나섰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좀 그렇다. 당시 전차경주는 기수, 마부를 한팀으로 봤다. 네로 황제가 팀에서 맡은 역할은 기수가 아닌 말 관리 마부였다. 67년 올림피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네로 황제 팀이 전차경주 우승을 거머쥐었다. 여기서 네로의 역할은 특별했다.

네로팀의 전차가 경주도중 사고로 완주하지 못했다. 그런데 심판관은 네로 황제팀 우승을 선언했다. 이유는? 끝까지 달렸으면 네로팀 우승이라는 기상천외한 유권해석 덕분이다. 허위사실 공표 해석하는 한국 대법원인가? 아닐 수도 있겠다. 네로의 특별한 1인 역할론을 보면 대한민국 국회가 닮은꼴인 것 같기도 하고...

판크라티온 모자이크. 로마시대. 튀니지 스팍스 박물관
판크라티온 모자이크. 로마시대. 튀니지 스팍스 박물관

◆B.C 648년 33회 대회 ⑧판크라티온

튀니지 2대 도시 스팍스. 중세 성벽 안에 마련된 박물관의 로마 모자이크 속 선수들을 보자. 상하체 공격을 펼치니 레슬링이 아니다. 서서 넘어트리는 것은 물론 자유형 레슬링처럼 상하체 구분 없이 모든 손기술이 허용된다. 권투처럼 주먹으로 상대를 때리는 것도 가능하다.

입으로 물거나 손가락으로 눈,귀,코,입 같은 약한 부위를 찌르는 것만 제외한 모든 형태의 공격이 가능했던 판크라티온(Pankration) 경기가 B.C648년 33회 대회 이후 올림픽 무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현대의 종합격투기(MMA)다. 1993년 미국에서 시작된 UFC(1997년 일본서 시작된 프라이드FC 병합) 경기는 고대 올림픽 판크라티온 경기의 후예다.

경마 소년 기수 청동 조각. B.C140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경마 소년 기수 청동 조각. B.C140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B.C 648년 33회 대회 ⑨경마, B.C 520년 65회 ⑩호플리토드로모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B.C6세기 말 적색인물기법 도자기 그림을 보자. 투구를 쓰고, 각반을 차고 원형 방패를 든 전형적인 그리스 중무장 보병 호플리테(Hoplite)의 모습이다. 그런데, 중무장 보병이라면 창을 들고 전투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무기를 들지 않았고, 전투하는 자세도 아니다.

호플리토드로미아 선수. B.C 5세기. 루브르 박물관
호플리토드로미아 선수. B.C 5세기. 루브르 박물관

B.C 648년 33회 대회 ⑨경마, B.C 632년 37회 대회 소년 체전 실시에 이어 B.C 520년 65회 대회 때 도입된 ⑩호플리토드로모스(Hoplitodromos), 일명 호플리토드로미아( Hoplitodromia) 경기다. 우리말로 쉽게 바꾸면 중무장 '군장 달리기'. 투구와 각반, 방패를 더해 약 25kg 무게의 군사장비를 갖춰 달리는 경기다.

2두 전차경주. B.C420년-B.C400년. 대영박물관
2두 전차경주. B.C420년-B.C400년. 대영박물관

나팔수. 로마 모자이크. 4세기. 시칠리아 피아자 아르메리나.
나팔수. 로마 모자이크. 4세기. 시칠리아 피아자 아르메리나.

▲B.C 408년 93회 대회 ⑪2두 전차경주, B.C 396년 96회 ⑫나팔수 대회 ⑬전령 대회

인기 많던 전차 경주에서 말 두마리가 끄는 2두 전차경주를 도입하고 대신 경마는 폐지한 뒤, 나팔수 대회와 전령 달리기 대회를 도입했다. 4두 전차, 2두 전차, 이런 종목 보면 현대 몰림픽에서 자동차나 오토바이 경주가 포함돼야 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B.C399년 3년 뒤 열린 B.C396년 96회 대회 이후 올림픽 경기종목은 12개였다.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