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낭비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항목이 바로 보도(步道)블록 교체다. 동네마다 심하게 표현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멀쩡한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꽤나 비싸 보이는 블록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볼 수 있다. 지자체 재정 자립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세금 낭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초자치단체마다 매년 적게는 수억원씩 예산을 잡아 보도블록을 바꿔 댄다.
사람들만 다니면 정해진 내구연한(耐久年限)까지는 버틸 텐데 하루 수백 대 차량이 다니는 길에도 블록을 깐다. 결국 폭우가 한 번 쏟아지고 나면 준공한 지 두어 달도 안 된 블록조차 곳곳에서 뒤집어진다. 오죽하면 국토교통부 예규(例規)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은 보도 포장은 신설 또는 전면 보수 준공 후 10년 이내 전면 보수를 금지할 정도다.
돈이 부족한 정부가 올해 상반기에만 한국은행에서 빌린 돈이 91조원이 넘는다. 경기 부양(浮揚)을 위해 예산을 신속하게 집행하라고 지시했는데 예상보다 세금이 적게 걷힌 탓이다. 결국 한은에 만들어 놓은 '마이너스 통장'(일시 대출 제도)으로 임시 변통하고 있다. 6월 말까지 빌린 돈은 91조원, 갚은 돈은 71조원이고 대출 잔액만 무려 20조원에 가깝다.
빌린 돈이니 공짜일 리 없다. 이자만 1천291억원에 이른다. 상반기 기준 이자 규모 역대 1위다. 임시로 빌려 쓴 돈 외에도 국고채(國庫債) 이자 비용만 지난해 결산 기준 20조원에 육박한다. 나라에서 쓴 전체 돈 대비 이자비용 비중은 2015년 이후 처음 3%대에 진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해 국고채 발행이 늘어난 데다 최근 금리가 높아진 탓도 크다. 문제는 거둬들이는 세금이 부족한 상황이 쉽사리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민생경제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에 시급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를 타개(打開)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재정 당국은 돈줄 죄기에 나서기로 했다. 지금까지 100조원 남짓의 실질적 재량 지출만 구조조정을 했는데, 써야 할 항목과 규모가 정해진 경직성(硬直性) 재량 지출이나 법적 의무 지출까지도 줄일 수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총지출(638조7천억원) 중 의무 지출은 340조원, 경직성 지출은 117조원에 이른다. 이런 구조조정 시도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이다. 지출을 줄이기는 어렵다. 특히 관행(慣行)처럼 집행되던 항목이면 더욱 그렇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사례처럼 지출 감소 시 발생할 수많은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뭉텅이로 예산을 깎으면 더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적자인 나라 살림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금 투입이 불가피한 항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시기에 맞춰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고 연금 적립액의 효율적인 투자 방안 마련 등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면 연금은 고갈(枯渴)된다. 국가가 보장하는 연금이라며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던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연금이 바닥을 드러내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처럼 세금을 투입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이마저도 극단적인 인구 감소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장담할 수 없다.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이 2029년 바닥 나 2042년엔 적자만 563조원에 육박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장기적 안목의 국가 재정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자칫 국가 예산 운용마저 천수답(天水畓)으로 전락할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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