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집에는 TV가 없다. 몇 년 전 이사하면서 없애 버렸다. '바보상자'라는 지론 때문이다. TV를 없애 '바보'가 되지 않았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불편한 게 하나 있다. 요즘 어떤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드라나마 영화에 대한 정보는 신문 지면에서 얻는다. 7월 17일 자 조선일보 김윤덕 칼럼 〈경제개발 원조가 민주당? '삼식이 삼촌의 거짓말'〉도 그중 하나다. 지난달 19일 종영됐다는 송강호 주연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을 비평(批評)한 칼럼인데 그중 한 대목을 옮겨 본다. "문제는 세끼 밥 먹게 해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박정희가 아니라 민주당이 설계한 것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산업단지를 세우고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인천을 잇는 고속도로를 만들어 중국 7억 인구에게 신발을 수출하면서 14억 켤레를 팔 수 있다'고 외치는 주인공이 민주당 정치인이다."
'삼식이 삼촌'의 주장은 절대 빈곤 탈출 발판 마련의 공헌자가 박정희가 아니라 민주당 장면 정권이라는 것이다. 좌파들의 전형적 선동이다. 드라마까지 이런 선동을 퍼 나르는 현실이 참으로 경악스럽다. 그런 선동은 두 개의 주장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가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장면 정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베낀 것이다'이다.
장면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만든 것은 맞다. 이승만 정부의 3개년 계획안을 참조해 1961년 5월 10일 마무리됐다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안(1961~1965)이다. 그러나 이 안은 인쇄 과정에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발표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안이 박정희의 지침으로 성안(成案)돼 1962년 1월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골간(骨幹)이라는 게 박정희 폄훼론자들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맞으려면 장면 정부안과 군부안을 비교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운석장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장면 정부 경제개발계획 원본(原本)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 정권의 경제정책과 장면 5-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수립, 결론')
기자도 두 계획을 직접 비교 분석한 자료를 찾아봤는데 불민(不敏)하고 천학(淺學)한 때문인지 찾지 못했다. 기자가 찾은 자료는 신문 기사나 미국 국무부의 평가 자료 등 '2차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박정희가 장면을 베꼈다'고 단정하지는 않지만 그런 주장을 비중 있게 소개하거나 5·16 군부의 안이 장면 정부안과 동일하다고 기술한다. 2차 사료는 아무리 노력해도 무의식적 가공(加工)이나 배제(排除) 등 왜곡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가 장면을 베꼈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더구나 장면 정부의 계획을 검토했지만 참고할 내용이 없어 새 계획을 짰다는 군부 측의 주장도 있다.
'박정희 지우기' 두 번째 논리는 '5·16 쿠데타가 없었다면 장면 정부가 경제개발을 했을 것이다'이다. 안타까운 것은 좌파가 아닌 온건한 '리버럴'도 이에 동조한다는 사실이다. "박정희의 역할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 현대사 연구자로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박정희가 없었어도 경제성장이 성공적으로 되었을까'라는 질문이다.(중략) 만약 다른 사람이 정권을 잡았거나 민주당 정부가 계속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의 내용은 군사 정부나 박정희 정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원형과 변용-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원', 박태균)
이런 주장이 입증되려면 5·16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진압돼 장면 정부가 계속 집권하거나 다른 정권이 집권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불가역(不可逆)이다. '박정희가 아니라도 경제개발은 가능했다'는 소리는 관념의 유희(遊戱), 상상의 비약(飛躍), 무용(無用)한 '역사의 가정'이다.
무엇보다 이런 주장의 오류는 계획을 성공과 자동으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계획만 하면 성공한다면 경제개발에 실패한 나라는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음은 우리처럼 경제개발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한 중남미 국가들이 잘 보여 주고 있지 않나? 사회주의 천국을 계획한 소련의 붕괴는 또 어떤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갖고 있지, 처맞기 전까지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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