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재주복주(載舟覆舟)' 늘 가슴에 새겨야
정치권력은 시민이 정당성 부여, 정치의 주인이자 무관의 제왕은 바로 시민
게시글 고소·고발로 2차 피해 커져…법적 다툼 취하하고 구미발전 위한 통합 제안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로마제국의 최고 권력자는 속주의 왕과는 달리 왕관이 없었다. 시저(카이사르)도 머리숱이 없는 것을 가리기 위해 '월계관'을 썼을 뿐, '무관의 제왕'으로 지냈다. 하지만 로마군의 지지로 권력을 잡은 '칼리굴라'는 늘 왕관이 부러웠다. 어린 권력자는 왕관이 없는 대신 '신적 인물'로 추앙받기 원했다. 결국 자만했고, 몰락했다.
구미 정치권이 익명의 노조 게시글로 떠들썩하다. 보름 전쯤 '왕관의 자만심'이란 제목의 게시글이 고소·고발로 번지고 있어서다.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글에는 한 시의원으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19금 농담'과 사적 문자·카톡·개인적 만남 요구에 시달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시민 단체가 A시의원을 지목했고 해당 시의원은 '사실무근'이라며 시민 단체와 게시자·댓글 작성자까지 허위사실유포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구미시 공무원노조도 A시의원을 고발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수의 공무원이 '게시자 용의선상'에 오르는 등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후반기 의장 선거와 연관 지으며 기획·공작설까지 제기, 피해가 커지고 있다.
한 다선 시의원이 "앞으로 의회에는 가슴 파인 옷과 치마를 입은 여성 공무원 출입을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라니…. 유감스러운 일이다. 2차 가해는 엄연한 범죄 행위다. 시의회와 노조는 2차 가해 또는 피해 최소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성 비위 의혹에는 과잉 대응이 원칙이며 2차 가해와 피해를 막아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시저). 고소·고발에 더해 기획·공작론까지 나오는 판에 철저하게 밝히고 가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게시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제안한다.
A시의원은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느니 다선의 프로 정치인답게 휴대전화 임의 제출과 포렌식으로 결백을 증명하면 된다. 노조의 고발로 휴대폰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노조도 지름길이 있다. '법대로(路)'로 우회할 필요가 없다. 시의회 갑질과 성희롱 의혹 설문지를 토대로 법적 조언을 구해 언론에 공개하면 된다. 정치의 영역은 사법적 판단에 앞서 '도덕적' 잣대로 평가받는 게 일반적이다.
익명성을 보장받는 언론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자들은 목숨처럼 취재원 보호 의무(기자협회 윤리강령 7조)를 지킨다. 2005년 취재원을 보호하다 구속된 뉴욕타임스 주디스 밀러 기자는 법정 진술에서 "기자가 취재원 신분 비공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자유 언론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도 저도 망설여진다면, 게시글을 다시 읽어 보길 바란다. 글에는 불특정인을 고발하고 저격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했으면 좋겠다'는 미래지향적인 '바람'이 적혀 있다.
고소와 맞고소를 거두고 화합하는 '신의 한 수'를 생각해 봄 직하다. 용기 내어 분 '휘슬'이 내부자 색출과 또 다른 가해로 연쇄한다면 어떤 명분을 끌어와도 '죽은 정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은 민심을 통해 그 왕관의 정당성과 품격을 부여받는다.(載舟覆舟·순자) 하지만 정치가 본질과 책무를 망각한 채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자만심에 빠질 때 시민들은 그 왕관을 다시 거둬들인다. 이건 기획도, 조작도, 공작도 아닌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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