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세종본부장
요즘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반도체 기업은 단연 엔비디아이다. 비록 일일천하에 그쳤으나 지난 18일에는 시가 총액 3조3천350억달러(약 4천600조원)를 기록, 몸값이 최고로 비싼 회사가 됐다. 이는 국내 코스피 전체 총액의 약 2배다.
최근 5년 3천450%라는 놀라운 주가 상승에 '젠새니티'(창업자 젠슨 황+Insanity·광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급여 절반을 주식으로 받아 직원 상당수가 백만장자라는 외신도 눈길을 끌었다. 물론 해당 없는 이들에겐 근로의욕을 떨어뜨렸겠지만.
엔비디아의 성공은 사실상의 독점 덕분이다. 거센 인공지능(AI) 열기 속에 반도체 칩 제조사 가운데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거품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AI 혁명은 이제 막 시작한 파티"라는 낙관론 역시 만만치 않다.
독점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기업인의 대표 격은 '석유왕' 존 록펠러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에너지 회사였던 그의 '스탠더드 오일' 때문에 미국 반독점법이 만들어졌다. 당시 그의 재산은 미국 전체 GDP의 3%에 이르렀다고 한다.
피터 콜리어, 데이비드 호로위츠가 쓴 '록펠러가의 사람들'에 따르면 엄청난 재산 축적의 계기는 클리블랜드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다. 그의 나이 26세 때다. 제임스 딘의 영화 '자이언트'가 이 시대 미국 재벌들의 탄생 과정을 잘 보여준다.
소도시에 불과했던 클리블랜드는 이후 대호황을 맞았다. 이리 호수(Lake Erie)의 수운(水運)에 힘입어 정유·제철·자동차산업이 꽃을 피우면서 미국 제조업 중심지로 떠올랐다. 2만5천달러짜리 땅이 석 달 뒤 150만달러에 팔릴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영일만 심해 석유·가스 개발을 밝힌 이후 경북 동해안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추정 가치가 최대 2천조원 안팎에 이른다니 엄청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국내 증시에도 관련 테마가 빠르게 형성됐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산유국 반열에 오르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한 에너지 안보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돼 버렸다. 향후 석유 수요가 감소, 국내에서 유전이 발견되더라도 계륵이 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온다.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는 우리 속담처럼 야당은 대통령이 희소식을 발표했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미국 분석 회사에 대한 의구심을 '동문 카르텔 의혹'으로 키웠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인사의 산유국 언급은 '유전 게이트'로 몰고 갈 기세다.
대왕고래 구역을 글로벌 메이저 석유·가스 기업인 엑슨모빌이 검증한 것마저 걸고 넘어진다. 분석 회사 대표가 임원을 지낸 기업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다. 엑슨모빌은 스탠더드 오일의 후신이니 록펠러가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이쯤 되니 대왕고래가 동해 대신 서해에 있다면 야당 반응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시장 왜곡 우려에도 쌀 주산지인 호남 민심만 의식해 양곡관리법을 밀어붙이는 정당 아닌가. 내년 이맘때 장밋빛 시추 결과가 나오면 덮자고 하려나?
물론 국민 혈세를 성공 가능성 낮은 자원 개발에 무한정 쏟아부을 순 없다. 국회의 예산 검증이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 다만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프랑스 전문 기업의 낙제점 평가가 철저히 무시됐던 기억을 떠올리면 우리 정치권을 믿어도 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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