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데이팅 앱 중에 '이슬렌딩가복(Íslendingabók)'이라는 게 있다. 12세기 아이슬란드 중세 연대기 작가 아리 토르길손이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다양한 가족사를 다룬 고서에서 이름을 따온 앱이다. 젊은이들은 데이트를 신청하기 전 친족 관계를 계산해 주는 이 앱을 유용하게 쓴다고 한다. 혈족 결혼으로 후대가 유전병을 앓지 않길 바라는 염려 탓이다. 인구 37만 명의 아이슬란드는 외국인 유입도 적어 몇 다리만 건너면 친인척인 나라다.
결혼 시기를 늦잡거나 비혼이 선택 사항으로 당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한 때에 이색 프러포즈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이 대구시에서 나왔다. 신천 대봉교 아래 1천50㎡ 규모로 둥근 섬 형태의 프러포즈 데크를 놓는다는 구상이다. 프랑스 파리 센강의 다리(橋)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수심이나 주변 건물의 위용 등이 다르긴 해도 침산교~상동교 사이 12개 다리들의 길이가 200m 정도로 센강의 폭과 비슷하다.
에펠탑이 코앞에 보이는 드비이 인도교(Passerelle Debilly)에는 자물쇠 수백 개가 걸려 있다.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한 보행자 전용 다리다. 나무 재질 바닥이 특이한 이곳에서 에펠탑을 보며 프러포즈를 하고 그 징표로 자물쇠를 걸어둔 것이다. 태생적으로 프러포즈란 게 밤에 접어들 무렵 시작된다는 점에서 에펠탑의 야경과 서쪽으로 보이는 일몰도 확실한 유인 요소다. 황혼에 이르도록 영원하자는 다짐을 가슴에 새길 방법은 없었는지 교각 여기저기에 맹세의 흔적들이 각국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
'낭만 파괴자'라는 악평이 돌아와도 어쩔 수 없지만 프러포즈는 짜고 치는 고스톱에 가깝다. 확실한 승낙이 전제되지 않은 깜짝 프러포즈는 흑역사로 남을 위험성을 안고 있다. 상견례 등을 거치고,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예식장 예약까지 마친 뒤 화룡점정의 통과의례가 된 지 오래다.
남자가 하지만 성공 여부는 여자가 판단한다.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이니 뭔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도 생길 만하다. 신천 대봉교 데크에서 프러포즈를 한다면 에펠탑의 자리에 대백프라자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간 구성도 감안해 프러포즈 데크가 들어서야 할 것이다. MZ 세대 여성들의 조언이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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