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다시 ‘우물안 개구리’ 되는 코리아

입력 2024-06-06 13:17:26 수정 2024-06-06 18:17:06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

우리나라 스포츠의 하향 분위기가 심상찮다. 일례로 이달 3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톱10에 든 한국 선수는 1명도 없었다. 1997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었다. 1998년 IMF 경제위기 때 박세리가 물속에 맨발로 들어가 공을 치는 투혼으로 우승한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작년까지 26년 동안 11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올해는 톱10 안에 한국 0명, 일본 5명, 태국 3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방한(訪韓) 국회 연설에서 "올해는 톱10에 한국 선수 8명이 들었다"며 부러움과 칭찬을 표했던 게 아득한 전설 같다. 다음 달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16일간 열리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도 한국의 쪼그라드는 모습은 역력하다.

32개 종목에서 329개 금메달을 놓고 1만500명의 선수들이 경쟁하는 이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 규모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72명) 이후 48년 만에 가장 적은 140명 정도다. 이는 7개 구기 종목 중 남녀 축구, 남녀 농구, 남녀 배구, 남녀 하키, 남녀 럭비, 남녀 수구, 남자 핸드볼 등에서 모조리 출전권을 놓쳤기 때문이다. 한때 효자 종목이던 레슬링과 복싱은 2명, 0명이다. 양궁 외엔 메달 색깔을 장담하는 종목조차 없다.

그래서 올해 한국은 금메달 5, 6개를 따 종합 15~20위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2016년 리우까지 4개 대회 연속 유지해 온 '톱10' 역사는 이미 끊어졌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종합 16위로 1984년 LA올림픽 이후 37년 만에 가장 저조했다. 저출생 심화에 따른 병역 자원 급감으로 올림픽·아시안게임 등에서 입상한 체육인에 대한 병역 면제 특례 제도까지 폐지되면 한국 스포츠의 추락은 더 빨라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흐름은 고질적인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는 미국·일본 등과 달리 치열한 경쟁과 승리의 가치를 인정 않는 사회 분위기 탓이 크다. 또 느슨하고 안온한 한국 프로리그에서 조금만 인정받으면 수억~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그러니 "굳이 외국에 나가거나 국위 선양을 위해 피땀 흘려 뛰는 게 어리석다"는 '탈(脫)헝그리 정신'이 퍼지고 있다. 동년배 직장인보다 수십 배 많은 연봉을 받으며 적당히 버티자는 선진국병(病)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우리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400명의 선수단을 출전시키는 이웃 일본은 선수들의 눈빛부터 다르다. 그들은 부활한 스포츠 강국의 글로벌 전사(戰士)들이다. 한국이 앞섰던 여자 농구의 경우, 3년 전 올림픽에서 한국은 조별 리그 탈락했지만 일본은 은메달을 땄다. 그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여자 축구, 남자 핸드볼, 여자 하키, 남자 배구 등에서도 일본은 모두 파리올림픽에 출전한다. 2011년부터 세계 정상을 목표로 5년 단위 계획을 세워 매진한 일본 사회의 노력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다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형국이다. 월드 클래스(world class)가 되려는 야망은 남의 일로 여긴 채 국내에서 안주하며, 자족하고, 워라밸을 즐기려는 분위기가 대세가 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풍조는 글로벌 안목은커녕 국제 정세에 관심도 없는 국회의원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 만들고 있다.

탁월함보다 분배·평등·인권을 절대시하고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해고 금지 등으로 사회 전체가 복지 천국이 되는 마당에 땀 흘려 분투하고 외국과 경쟁할 생각을 갖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스포츠에서 시작된 하락세와 쇄국적인 조짐이 이미 후진적인 정치는 물론 기업과 문화, 대학, 언론 등으로까지 확산해 우리나라 전체가 퇴행하는 예고편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120여 년 전 구한말 우리 선조들은 세계와 벽을 쌓고 안에서 소리(小利)를 놓고 다투다가 국권(國權)을 잃었다.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눈높이와 사유의 수준을 높이고 스포츠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경쟁 대상과 범위를 세계로 확장·심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코리아의 내리막길을 막을 수 있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