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36>헤로도토스의 ‘역사’, 왕가의 ‘막장 드라마’

입력 2024-06-03 10:20:39

이경규 계명대 교수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회의사당 앞 헤로도토스 조각상.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회의사당 앞 헤로도토스 조각상.
이경규 계명대 교수.
이경규 계명대 교수.

헤로도토스는 '역사' 덕분에 역사의 아버지라는 영예를 얻었다. 물론 이 방대한 역사서는 사실과 데이터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신화·설화·민담이 곳곳에 상감(象嵌)되어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쓸 때 민중들의 이야기를 가미해 넣은 것처럼 헤로도토스도 세상을 떠돌며 민중들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 전달이 아니라 시대의 관심과 가치관에 따라 새로 직조된 것이었다. 그렇게 '역사'는 문학성을 살리며 재미와 교훈을 더했다.

방대한 '역사'의 중심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책의 시작과 말미에는 엽기적인 남녀상열지사가 배치되어 있다. 처음엔 칸다울레스의 특이한 탐미주의가, 마지막엔 크세르크세스의 '막장 드라마'가 나온다.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는 왕비의 미모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그녀의 나신을 혼자만 보는 게 너무 아깝다며 경호원 기게스에게 한 번 보기를 강요한다. 왕의 강권을 끝내 물리치지 못한 기게스는 밤에 침실 커튼 뒤에 숨어 왕비의 누드를 본다. 그러나 아차 하는 순간에 왕비의 눈에 띄고 만다.

다음날 왕비 앞에 불려 간 기게스는 바로 자결을 하든지, 왕을 죽이고 자기와 결혼하여 새 왕이 되든지 선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한 나라에 왕이 두 명일 수 없듯이 왕비의 몸도 두 명이 볼 수 없다는 논리다. 결국 기게스는 왕비의 도움을 받아 칸다울레스를 죽이고 왕좌에 오른다. 기게스를 부정하는 세력도 있지만 델포이 신탁이 그를 인정함으로써 그의 왕위는 보장된다. 급작스러운 왕조 교체에 미모의 왕비가 한몫했을 것이라는 상상이 이러한 야사를 만든 지도 모른다. 혹은 아내의 미모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남자가 왕위를 어떻게 수호하겠느냐는 반문도 깔려 있다. 분명한 사실은 권력이나 미는 둘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크세르크세스는 희대의 막장 드라마를 연출한다. 그리스와의 해전에서 돌아오던 길에 동생(마시스테스)의 아내, 즉 제수를 보고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얻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반응이 없다. 현모양처의 표상이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다. 마침내 크세르크세스는 동생의 딸, 즉 질녀(아르타윈테)를 자기 아들(다레이오스)과 결혼시킴으로써 제수에게 좀 더 가까이 간다는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런데 며느리를 보는 순간 제수의 존재는 싹 사라지고 열병의 상대가 바뀐다. 아르타윈테는 쉽게 넘어오지만 보통내기가 아니다. 왕의 어떤 선물도 마다하고 왕비(아메스트리스)가 심혈을 기울여 짜 준 웃옷을 달라고 한다. 아르타윈테는 그것을 입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닌다. 격분한 왕비는 원흉은 그녀의 어머니, 즉 동서라며 그녀를 잔혹하게 살육한다. 뒤늦게 동생 마시스테스가 형에게 반격을 계획하지만 간단히 제압된다.

헤로도토스는 왜 거대한 전쟁사 앞뒤에 왕가의 막장 드라마를 돌리고 있을까? 첫째, 재미를 위해서다. 사람들에게 자기 책을 낭독하며 밥벌이하던 그로서는 앞뒤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배치하여 관심을 끌려고 했을 것이다. 둘째, 이국의 이야기라 수위가 높지만 따지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헤로도토스도 자국(그리스) 우월주의는 어쩔 수 없었다. 셋째, 멘토 호머처럼 헤로도토스도 아무리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라도 시간 속에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허무를 말하고 싶었다. 역사 앞에 그저 겸허가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