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세종본부장
고대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의 그리스어 원래 제목은 '삶의 비교'(Bioi Paralleloi)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줄리어스 시저처럼 공통점이 있는 로마와 그리스 명망가를 묶어서 대비시켰다. 물론 그리스인 취향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저자는 애당초 인물 각자가 성취한 업적의 크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의 본성을 비교함으로써 후세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닮아야 하는지를 말하려 했다.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추구한 중국 사마천의 '사기 열전'(史記 列傳)과도 일맥상통한다.
과문한 탓에 훗날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는 모르지만, 요즘 각국 지도자 가운데 쌍(雙)으로 기록될 만한 이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스트롱맨'들이다. 집권 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실제로 푸틴이 3선에 오른 2012년 러시아 한 일간지는 그를 톨스토이의 소설 속 목각 인형에 빗댄 만평을 실었다. 러시아판 피노키오인 '부라티노'의 머리 윗부분이 왕관 모양으로 자라는 그림이다. 전임자 보리스 옐친의 '인형'이 차르(황제)로 거듭난 걸 꼬집었다.
같은 해 최고 지도자에 오른 시진핑은 이미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 체제를 완성했다. 지난해 중화인민공화국 사상 첫 3연임에 성공, 2028년 3월까지로 임기가 늘어났다. 하지만 추가 연임을 위해서라면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이들이 자국뿐 아니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국가들의 지도자란 사실이다. 특히 최근 북한과는 더욱 밀착하고, 한국은 대놓고 적대시한 경우가 잦다는 점에서 우려를 거둘 수 없다. 이달 중에 이뤄질 두 정상의 중국 회동을 주목하는 이유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우리 정부는 경색 국면 해소에 애쓰는 모양새다. 주요 국가들이 보이콧한 푸틴 대통령의 다섯 번째 취임식에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가 참석한 게 이런 맥락이다. 또 조태열 장관은 13일 한국 외교 수장으로선 6년 반 만에 중국을 찾는다.
이달 말 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둔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한·러 관계 개선을 시사했다. "불편한 관계"라면서도 "가급적 원만하게 잘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질문이 없었던 까닭에서인지 중국 관련 언급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정부의 이 같은 외교 스탠스 변화는 바람직하다. 지난 2년간 한·미·일 공조를 다져 놓은 만큼 이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게다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소원해진 관계 회복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우리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을 정도로 국제 정세는 꼬일 대로 꼬여 있다. 총선 승리로 기세가 오른 야당이 '일본 라인 사태'를 두고 민족감정 공세에 나서는 등 국내 정치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역사와의 대화'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주변 열강(列強)들이 또다시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국익을 챙기는 외교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남은 3년 동안 좀 더 유연해진다면 이 정권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결코 박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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