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발표한 '2023년도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는 눈여겨볼 부분이 많다. 먼저 TV·라디오·신문·인터넷 포털·SNS 등 매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우리 국민의 뉴스 이용률이 대부분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모바일 기기로 매일 포털 뉴스를 읽는다"는 응답 비율은 2021년 41.5%에서 지난해 26.5%로 급감했다.
이는 인터넷 포털 전반에 대한 이용률이 2년 동안 거의 변함없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뉴스가 일상에서 외면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언론의 공정성·전문성·영향력·정확성 평가 모두가 추락했는데, 이 중 영향력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도 주목된다. 같은 맥락에서 '언론인'과 '뉴스 및 시사 정보'에 대한 신뢰도도 나빠졌다. 인터넷 포털,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서비스, 유튜브 등을 언론으로 인식한다는 대답이 각각 61%, 23%, 31%에 달한 점도 색달랐다.
이용자에게 만족감 제공은커녕 매력적이지도 못한 한국 언론이 영향력을 잃고 신생 매체에 밀려나는 현실이 재확인된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고 각종 테크놀로지의 보급·확산으로, 이런 흐름은 더 깊고 더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다 팩트보다 진영을 앞세우는 일부 언론의 허위 정보 생산과 괴담·선동, 그리고 뉴스를 돈벌이용 장사로만 여기는 매체들의 행태는 한국 언론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10년 넘게 계속되는 침몰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언론은 우리가 세상을 알고 공론을 형성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이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미국 언론사상가 월터 리프먼의 지적대로, 언론이 허약한 상태에서 민주주의의 성숙과 사회의 일류화·선진화는 꿈도 못 꾼다.
어쩌면 최근 한국 정치의 하향 저질화와 한국 사회의 표류를 낳는 책임의 일단이 언론에 있는지도 모른다. 위기 탈출과 부흥을 향한 화살은 언론계 종사자들이 쏴야 한다. 첫 번째는 수명을 다한 옛날 방식과의 결별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30년 동안 글로벌·디지털·지식 사회로 진화했으나, 언론은 많은 사회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자기 혁신에 소홀해 정체됐다.
한 예로 1950, 60년대부터 정형화된 언론사의 공개 채용 및 도제식 수습 교육과 출입처 중심 취재는 지금 효용과 적실성을 모두 상실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는 새로운 감각의 뉴스, 새로운 뉴스 공급 방식, 새로운 인력 운용 체계, 새로운 뉴스룸 조직이 절실하다. 그 위에서 지식·정보·통찰력·깨우침을 주는 콘텐츠를 디지털로 생산·유통하며 이용자와 소통하는 선진 미디어로 나가야 한다.
두 번째는 언론사마다 특장(特長)을 가진 '고슴도치' 같은 개성 있는 매체로의 변신이다. 디지털 전환 충격은 언론 기업이 전면 리모델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임직원들이 자사의 과거와 현재 성공을 토대로 공감하는 비전을 만들어 전력투구할 때 미래가 열린다. 이를 통해 월드 클래스, 또는 아시아 최고 언론사도 생겼으면 한다. K-컬처, K-기업, K-방산과 달리 K-언론만 불가능하다는 패배주의는 근거가 없다.
이웃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는 디지털 추진 13년 만인 작년 말 디지털 유료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15년 인수한 파이낸셜타임스(FT)까지 포함한 닛케이의 디지털 총구독자는 326만 명으로 세계 3위다. 일본은 하는데 한국이 못 할 까닭이 없다.
마지막은 언론의 '혁신 생산 기지'로서 저널리즘 스쿨 도입과 활성화이다. 저널리즘 스쿨은 전문직주의에 충실한 언론인 양성, 중견 언론인 재교육, 대학·언론 기업을 잇는 산학협력 같은 기능 수행에 특화된 기관이다. 동시에 하루하루 뉴스 제작에 힘겨운 언론을 사회가 돕는 방도이자,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는 '희망 보루'가 될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 등을 감안하면, 우리 언론에 남아 있는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현장 언론인과 전문가, 뜻있는 시민들이 경계를 넘어 손잡고 행동할 때, 언론은 국민 신뢰를 회복하면서 한국 사회의 전진(前進)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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