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10>여행과 관광 사이

입력 2024-05-10 06:30:00

날것 그대로의 '남반구 알프스' 섬뜩한 야성이 울부짖는 곳

영화 나니아연대기와 반지의 제왕 촬영지였던 뉴질랜드 와이타키 화이트스톤 지질국립공원에서 만난 탐방로. 언뜻 스페인 산디아고 순례길을 연상시킨다. 주변의 광활하고 황량한 야성의 초원은 관광을 여행으로 변주해주는 신성한 힘을 머금고 있다.
영화 나니아연대기와 반지의 제왕 촬영지였던 뉴질랜드 와이타키 화이트스톤 지질국립공원에서 만난 탐방로. 언뜻 스페인 산디아고 순례길을 연상시킨다. 주변의 광활하고 황량한 야성의 초원은 관광을 여행으로 변주해주는 신성한 힘을 머금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위한 13일의 여정이 모두 끝났다.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나로 돌아온 것 같다. 그래도 출발 직전의 '설렘'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인천공항 세관을 통과해 3번 게이트에서 오후 6시발 집으로 향하는 동대구행 리무진버스, 거기에 앉았을 때 하모니카 소리 같이 밀려들던 '객수감'(客愁感), 감도의 급수가 사뭇 달랐다. 설렘이 '뿌리'라면 객수감은 거기서 발아된 '줄기'쯤 될까.

◆현지인의 표정

아무튼,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지난 일정을 반추하고 있다. 재즈 한 방울에 커피 두 잔을 거느리면서. 갑자기 커피와 재즈광인 일본 출신의 소설가 하루키의 눈매가 생각났다. 그 위에 이적의 노래 '다행이다'의 한 구절을 포개본다.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란 대목.

여행 내내, 풍경보다 현지인의 '표정'에 더 관심이 쏠렸다. 표정에는 각 나라만의 기질과 문화, 그만의 삶의 색깔이 녹아 들어가 있다. 개인만의 연대기다.

여행과 관광. 산성과 알칼리만큼 질감이 다르다. '경치'를 포착하는 게 관광이라면 여행은 '풍광'을 품는다. 관광이 '구상미술'이라면 여행은 '추상미술'랄까. 관광이 길에 갇혀 있다면 여행은 길 밖의 길을 찾는 과정, 전자가 곧이곧대로라면 후자는 너머(Beyond)의 안목을 캐내려 한다. 그래서 관광은 지친 자기를 안 지친 상태로 데려오려 하지만 여행은 지친 자신의 슬픔과 힘듦을 가장 깊게 진동시켜 결국 '생겨 먹은 대로의 자기'를 수긍하게 만드는 내적 항체를 키우는 과정이랄 수 있다. 관광은 '놂'이라지만 그래서 여행은 '앎'과 조응하게 된다. 그러니 관광은 가장 주관적인 자기로 돌아오게 하지만 여행은 객관적인 자기 앞에 서게 도와준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전경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전경

◆자연과 사람

결국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다. 개똥철학 같겠지만, 누구나 삶의 어느 구간을 통과하면, 모두의 삶이 이런저런 이유로 다 비슷해 보인다. 다들 상처투성이, 그걸 품으면 세상만사가 가족의 일상 속으로 귀속된다. 홈런(Homerun)을 날려야 홈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야구의 속성을 빼닮았다. 이래서 '사람=삶'이란 등식이 성립되는 거겠지. 20세기를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으로 연출해낸 명배우, 찰리 채플린의 명언 하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비극'.

얼차려 자세와 선잠 상태를 오가며 11시간 이상 여객기에 매달려 있었다. 북두칠성이 아니라 남십자성이 달리는 남반구, 그 아랫도리에 장착된 섬 같은 대륙인 호주, 그 몸에서 가지처럼 발아한 것 같은 뉴질랜드. 호주는 얼핏 섬 같은 데 실은 '대륙'이다. 국제지리학회에서 '그린란드보다 크면 대륙'이라 불러주는 기준 때문이다.

볕 좋은 날 바지랑대에 걸려 있는 빨래처럼 홀가분하게 두 나라에서 서성거렸다. 민방위훈련을 방불케 하는 촘촘한 일정, 투어가이드 비즈니스가 선사하는 묘한 압박감은 가성비 좋은 패키지여행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공짜가 없는 세상이니깐.

음양의 두 마음을 대동하고 감탄사 연발의 여러 관광지를 훑어 내려갔다.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블루마운틴, 골드코스트 심장부에 있는 서퍼스 파라다이스 비치 라이브클럽, 뉴질랜드 버전의 피요르드 크루즈관광의 진수를 보여주는 밀포드와 한 쌍이 된 마운틴 쿡 퍼시픽 트레일…. 설산, 빙하, 원시림, 강물과 협곡 등 풍광의 모든 요소를 2시간여 보여주는 트랜즈 알파인 유람열차, 영화 나니아연대기와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유명한 와이타키 화이트스톤 지질공원의 기암괴석과 그 언저리를 감싼 광야의 비린 바람…. 파리 에펠탑‧뉴욕 자유의 여신상‧중국 만리장성과 함께 지상 최고의 랜드마크로 등극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머플러처럼 감싸주고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밤의 시드니에 걸맞게 요정처럼 출동하는 모던하고 디럭스한 야경. 그걸 만끽하게 해주는 크루즈 레스토랑에서의 디너.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만 있는 것 같았다. 시드니는 멋진 야경을 제조하기 위해 불을 켜두는 빌딩에 야간용 전기세를 대납해준다.

◆공기와 바람 사이

뉴질랜드 마운틴 쿡의 한 전망대에서 바라본 설봉. 100년전만 해도 빙하에 감춰져 있었는데 지금은 온난화로 인해 맨살을 드러낸 상태다.
뉴질랜드 마운틴 쿡의 한 전망대에서 바라본 설봉. 100년전만 해도 빙하에 감춰져 있었는데 지금은 온난화로 인해 맨살을 드러낸 상태다.

뉴질랜드는 특히 초미세먼지의 틈입을 거부했다. 최고의 경치는 '바람'이었다. 공기는 실험실에서 정제된 '증류수'. 그 안에 인간의 감정이 부착되어야 비로소 '바람'이 될 수 있다. 여유가 사라진 공기는 하나의 기류에 불과하지 결코 바람으로 성장하지는 못한다.

북반구 알프스는 이미 친견한 바 있다. 이번에 남반구 알프스를 뉴질랜드에서 만난다. 알다시피 지구에 알프스는 두 개가 있다. 유럽에 있는 건 '노던 알프스', 뉴질랜드에는 '서던 알프스'가 있다. 서던 알프스는 광활하고 섬뜩한 야성으로 울부짖는다. 노던 알프스의 전원풍 풍광은 왠지 너무 잘 빚어놓은 일본산 도자기 같다. 유럽 알프스는 길들여진 야성이고 뉴질랜드 알프스는 날것 그대로였다.

뉴질랜드 초원은 '대지의 종착역' 같았다. 세상의 양떼가 여기로 다 모인 것 같았다. 양몰이 개가 이들을 몰고 다닌다. 양치기 아저씨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원격으로 개들만 관리한다. 자연보호를 위해 그 흔한 축사도 짓지 않는다. 그냥 자연상태에서 살게 방목한다. 1~4km 짜리 바퀴달린 스크링클러는 농장주가 자기 집에서 폰으로 가동한다. 가장 자연적이면서도 가장 첨단적인 포인트였다. 너무나 한가로이 풀을 뜯었기에 양모 중의 양모로 평가받는 메리노 양털이 탄생한 건지도 모르겠다. 박정희는 가난한 이 나라의 근대화를 위해 재봉사를 파독 광부와 간호사처럼 지원해주었다. 그 대가로 뉴질랜드의 축산 노하우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후 메리노 양털 때문에 한국 대표 내의인 '메리야스'가 태어난다.

◆선진국의 존재감

멀리서 바라 본 호주 골드코스트의 풍광
멀리서 바라 본 호주 골드코스트의 풍광

신이 모든 걸 주는 게 아닌 모양이다. 너무 맑은 대기지만 오존층은 말이 아니다. 너무 파괴돼 자외선 지수가 너무 높다. 대낮의 볕은 너무 따가웠다. 여기저기서 피부암 적색경보가 발효된다. 선글라스와 선크림은 필수가 돼 버렸다.

황량하면서도 고즈넉한 광활한 초원, 그걸 병풍처럼 감싸주는 감도 좋은 뭉게구름이 동행한 사람의 가슴을 동심으로 주물러준다. 청정의 국가답게 이 나라에서는 아직 생수가 생소했다. 다들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해변 곳곳에 물을 자유롭게 채울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반려견이 가족이다 보니 반려견을 위한 음수 용기도 함께 설치해놓았다. 이런 게 선진국의 존재감 아니겠는가.

세계적 관광지 조식 뷔페 식탁 옆 유리창 정경처럼 여유롭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여행과 관광 사이. 내 시선은 그 경계를 한 마리 새처럼 날아다닌다.

십수년전만 해도 한국인 관광객은 선진국한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에티켓 결여 때문이다. 이제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해버렸다. 원래 유럽 관광객이 나타나면 일본이 뒤를 따르고 이어 한국이 나타나면 유럽은 '물이 안 좋다'면서 그 관광지를 외면했다. 이제 한국 이미지는 쾌속 항진 중. 참,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그래도 현지에서 만난 인상적인 커피는 라떼와 카푸치노의 물성을 고루 갖고 있는 '플랫화이트'였다. 지금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커피숍'이란 물성은 단연코 지구촌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그래도 현지에서 만난 인상적인 커피는 라떼와 카푸치노의 물성을 고루 갖고 있는 '플랫화이트'였다. 지금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커피숍'이란 물성은 단연코 지구촌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헤밍웨이 스페셜

두 나라 음식은 너무나 평범했다. 고작 스테이크, 그리고 영국 전통이 스며든 피시 앤 칩스 정도. 아참, 라떼와 카푸치노의 물성을 포함한 신개념 커피, 국내에는 론칭되지 않은 '플랫화이트'가 그런대로 인상적이었다.

이 글을 적고 있자니 남미 혁명의 심장부랄 수 있는 쿠바, 거기서 불후의 명작이 되는 '노인과 바다'를 탈고한 헤밍웨이의 건조하고 딱딱한 '하드보일드 문체'가 생각났다. 일인칭 화자의 내러티브 도입부가 인상적인 문장이다.

쿠바에서 미국으로 추방당하기 전 헤밍웨이의 친구는 쿠바 도심을 감싸는 말레콘(방파제)의 파도, 그리고 어둑해지면 그의 우울을 더욱 심연 깊은 곳으로 데려가주는 두 칵테일을 파는 술집이었다. 그 술은 모히토(Mojito)와 다이키리(Daiquiri). 민트잎과 라임주스가 주재료인 모히토는 럼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다. 럼은 사탕수수를 증류한 술이다. 제3세계의 소주 같은 거다. 그는 한 바에서 이 둘을 다 마시지 않았다.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마이키리는 '델 플로리시타에'서 음미했다. 이 둘은 현재 '헤밍웨이 스페셜'로 명명돼 지금도 쿠바 관광객의 발길을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다. 만약 헤밍웨이는 없고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만 존재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쿠바가 여행객의 성지가 됐을까?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아직 온통 영국 왕실의 상징인 퀸(Queen)의 위엄이 너무 짙었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워낙 좋은 대기와 풍광을 갖고 있어 그런지 우리처럼 다양한 식문화를 갖고 있지 못했다. 사진은 여느 레스토랑에서 파는 호주산 스테이크.
뉴질랜드와 호주는 워낙 좋은 대기와 풍광을 갖고 있어 그런지 우리처럼 다양한 식문화를 갖고 있지 못했다. 사진은 여느 레스토랑에서 파는 호주산 스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