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양성' '구하라母 사례' 논란 일던 유류분 제도…"사회적 변화 반영해야"

입력 2024-04-25 18:28:13 수정 2024-04-25 21:04:28

남아선호사회서 아내·딸 보호 취지…가족공동체 의미 등 달라져 개편 필요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민법 제1112조 등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형제자매에게 유산상속 강제'는 유류분 제도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연합뉴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민법 제1112조 등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형제자매에게 유산상속 강제'는 유류분 제도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연합뉴스

도입 후 47년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던 유류분(遺留分) 제도가 25일 헌법재판소의 위헌·헌법불합치 판결로 대대적인 손질을 앞두게 됐다. 자녀 사망 시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일명 '구하라 법' 또한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대심판정에서 열린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에서 일부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지난 1977년 도입된 후 한 차례도 개정된 적이 없었지만 사회적인 여건 변화에 따라 이같은 판결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제도는 앞서 지난 2010년과 2013년에도 헌재 심판대에 올랐으나 모두 합헌 판단을 받았다.

유류분 제도는 고인의 의도을 고려하지 않고도 법정 상속인들이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최소한의 비율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당초에는 상속 재산이 주로 아들, 특히 장남에게 돌아가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과 다른 자녀의 생존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가족이 함께 농사를 짓기 때문에 가족 재산이 있었던 농경 중심 사회도 제도가 도입된 배경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배우자와 자녀 등에겐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부모와 형제·자매에겐 3분의 1이 유류분으로 규정됐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된지 47년이나 흐르면서 이 제도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부모가 사망해 유산을 상속할 무렵 자녀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해 있고 형제·자매 관계를 비롯해 가족 공동체의 의미도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생존권'을 취지로 강제로 상속분을 부여하는 이 제도가 변화한 현대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여기에 지난 2019년 가수 고(故) 구하라 씨가 사망한 뒤 20년 넘게 연락을 끊었던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하며 유산을 받아가 이 제도 전반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불거지기도 했다. 이후 해당 내용이 개정된 일명 '구하라법'이 발의됐지만 제20대 국회에서는 회기가 만료돼 폐기됐고 제21대 국회에선 계류 중이다.

'불효자'라도 규정된 법령에 따라 당당히 재산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제도의 한계로 지적됐다. 현행 유류분 제도에서는 별도의 상실 사유를 두지 않아 패륜 행위를 한 가족에게도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의 유산이 상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민사법원에서 유류분 제도가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진행돼왔다. 앞서 지난해 5월 헌재가 진행한 공개변론에서 위헌심판 청구인 측은 유류분 제도에 대해 '가족의 연대를 해치는 불효자 양성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헌재가 유류분 상속인에 형제자매를 포함한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는 내년 중으로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이날 단순 위헌 결정된 조항은 곧바로 효력을 상실했고 헌법불합치 결정된 조항의 입법 개선 시한은 2025년 12월 31일까지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 대해 "유류분 제도가 오늘날에도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가족의 긴밀한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에서 헌법적 정당성을 계속 인정하면서도 일부 유류분 조항의 위헌(헌법불합치)을 선언하고 입법 개선을 촉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