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까지 수성못 윤선갤러리
이용백·김현식·임현희·박인성 참여
컴퓨터의 오류를 알려주는 거대한 블루스크린이 전시장에 내려 앉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피에타, 비너스 조각상의 형태를 띤 이 설치작품은 회화와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대표 작가로 참여한 바 있는 이용백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미술관들이 문을 닫고 예술 활동이 물리적으로 제약을 받는 상황을 겪으며 예술의 본질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20여 년 전 방송국에서 일하며 맞닥뜨린, 공포의 블루스크린. 같지만 다른 바이러스를 매개로 촉발된, 강제로 셧다운된 두 상황은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
작가는 사이버 공간과의 소통이 차단되는 블루스크린을 작품에 덧씌움으로써, 소통하지 않는 예술은 물질 덩어리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려진 작품을 통해 예술의 진정한 소유에 대한 의미와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경계도 얘기한다.
이용백을 비롯해 김현식, 임현희, 박인성 등 현대미술가 4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VI·SIC'이 윤선갤러리(대구 수성구 용학로 92-2)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 'VI·SIC'은 비주얼 아트(visual art)와 음악(music)의 합성어다. 이번 전시에서는 맥락주의와 상징에 갇히기 쉬운 시각 예술의 한계를 넘어, 마치 음악처럼 직접적인 감동을 주는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김현식 작가는 허(虛)·공(空)·무(無)의 역설적인 존재성을 시각 예술로 드러냄으로써 '현(玄)'의 세계를 다룬다. 무한히 반복되는 선 사이의 여백은 공간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된 표현으로, 평면에 무한한 사유의 공간을 구축하고자 하는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임현희 작가의 작품은 잔잔하고 새까만, 깊은 밤 바다와 닮았다. 작가는 얇은 종잇장처럼 보이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느낌을 평면에 옮기고자 마티에르와 광택도 최소화했다.
붓질 대신, 먹물을 캔버스에 흘려 중력과 물질의 흐름을 따라 감정을 절제하며 회화를 완성한다. 그는 "물감이 쉽게 굳기에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작업이다. 특히 작업 과정에서 만나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을 중시한다. 나의 의지와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화해하며, 내가 작업 과정에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박인성 작가는 모든 시스템이 간소화, 디지털화되고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심지어 초월적 감각을 선사하는 현 시대에서 탈락된 부분, 즉 무게와 그림자 같은 것에 주목한다. 그는 디지털로 표현한 이미지를 오프라인으로 끄집어내 무게를 줌으로써 보는 이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문명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도구를 발명할수록 감각을 상실하고 의존성이 높아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단면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설치, 영상, 회화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5월 19일까지 이어진다. 053-766-8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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