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부터 딱 두 달만 제철
특유의 페로몬·액즙 머금고 있어 너무 깨끗이 씻으면 되레 역효과
암컷보다 1만원이 더 비싼 수컷…이리·애 넣고 끓이면 바다 내음
전국 주당이면 엄지척 할 수밖에
어패류는 단연 하절기보다 동절기가 절정. 살점이 더 야물고 향미를 발산한다.
한국의 겨울을 호령하는 여러 생선이 있다. 대표격은 명태‧대구‧복어‧물곰‧물메기‧대게‧홍어‧도치‧양미리. 2008년부터 이 중 한 놈이 아웃 된다. 남획으로 2008년부터 씨가 말라버린 국민 생선인 '명태'. 지금은 수입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어패류를 모듬 술안주식으로 왕창 끌어모은 경상도 3대 해산물 중심 술안주상이 있다. 전국 주당들이면 엄지척 할 수밖에 없는 통영다찌‧마산통술‧진주실비.
◆동절기 보양식
복어탕, 황태탕, 동태탕 등도 있지만 나는 동절기 보양식으로 '대구탕'을 으뜸으로 꼽는다. 언급될만한 대구탕 맛집이 몇 곳 있다. 시내 오토바이골목 근처 '태화식당'이 가성비도 좋고 가장 먹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욕쟁이 여사장은 나이 때문에 문을 닫아버렸다. 아쉽다. 사철 생대구탕 라인을 고집하는 시내 경상감영공원 옆 '유경식당',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는 상동 우방정화팔레스 근처에 있는 24년 역사의 '청림향'(여사장 백금선)에도 밑줄을 긋는다. 경북의 경우 영덕 강구시장 내 '탐라식당'이 인상적이다. 이 집은 맹물만 사용한다. 타계한 영화배우 신성일의 단골집이기도 하다. 부산에 가면 중앙동 1가 후미진 골목 안에 있는 '중앙식당'을 자주 찾는다.
◆두 달만 제철
대구 제철은 12월 중순부터 2개월간.
북위도 오호츠크해에서 베링해 사이 찬 바다로 북상했다가 부산과 진해, 거제, 마산 등에 둘러싸인 진해만 해수 온도가 12℃ 이하로 내려가면 남행을 시작한다. 산란을 위해 가덕수로를 통해 진해만으로 모여든다.
현재 대구는 삼면의 바다에서 다 잡힌다. '서해 대구'라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서해 대구 서식지는 한‧중잠정조치수역. 여기 대구는 진해만 권에서 잡히는 놈의 절반 크기라서 일명 '왜(倭)대구'로 불린다. 전체 물량의 30% 이상을 거제도 외포항이 거머쥐고 있다. 하지만 전체 어획량은 서해가 더 많다. 충남 보령권이 중심부.
현재 대구 메카는 역시 진해만권이다. 거제도 외포항과 이수도, 진해 외포와 관포, 그리고 용원항, 부산 가덕도 외양포 등이 거점이다.
◆거제 외포항으로 가다
거제도는 두 명(김영삼과 문재인)을 배출한 섬이기도 하다. 거제 외도 보타니아와 해금강, 그리고 최근 영덕 출신 백순삼 씨 때문에 유명해진 '매미성'이 관광객 몰이를 하고 있다.
제철에는 현장의 맛이 제일. 확인차 '한국 대구 1번지'인 거제도 장목면 외포항으로 차를 몰았다. 거가대교를 통하니 대구를 출발한 지 2시간 10분 남짓 걸려 외포항에 도착. 어항 초입에 있는 양천교 옆에 대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거제시는 대구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시어는 당연히 대구, 그리고 16년째 대구축제를 벌이고, 2016년에는 '거제대구'를 지리적표시단체표장에 등록시켰다.
주차장 바로 옆에 항을 따라 20여 개의 몽골텐트가 보인다. 생‧건대구‧젓갈 판매점이다.
나는 다소 번잡한 식당을 피하고 싶었다. 양천교 바로 입구 '양지바위횟집'에 갔다. 15년 전쯤 여수 출신 식객 만화가 허영만이 대구편을 연재할 때 취재차 들렸다가 단골로 삼은 가게다.
제철 생선은 생선 특유의 페로몬과 액즙을 머금고 있다. 이게 맛의 원천. 물로 너무 깨끗하게 씻으면 되레 역효과. 대파와 무 정도만 넣어 끓이면 된다. 끓는 과정에 천연조미료 맛과 같은 감칠맛을 뿜어낸다.
제철 대구탕 요리 원칙이 있다. 암컷보다 1만원 더 비싼 수컷이 한 맛을 배가시킨다. 그놈의 정소인 이리, 그리고 애(간) 등을 함께 넣어 끓인다. 그래야만 쌀뜨물처럼 뽀얀, 두툼하고 깊은 바다향이 피어난다. 암컷 알도 자잘해야 좋다. 너무 크면 입안에서 굴러다녀 맛을 감소시킨다.
괜찮은 곳이라 해서 가보면 다 국물 따로 생선 따로이다. 흉내만 대구탕이다.
이 집은 좀 달랐다. 국물이 희멀겋지 않다. 쌀뜨물처럼 뽀얗다. 대가리, 내장 등 8가지 재료를 탕약처럼 달여 탕 전용 육수를 고아낸다. 흥미로운 건 대구와 달리 무와 대파는 거의 넣지 않는다. 대구곰탕 같다. 곁 반찬도 곰삭은 것들이다. 2만5천원, 다른 곳보다 5천원 비싸다. 돈이 별로 아깝지 않았다.
◆약대구를 찾아라
관광객 대다수는 건대구와 약대구를 구별하지 못한다. 약대구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통마리째 건조시킨 것이다. 공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전통식이지만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공경일 사장이 운영하는 거제수협11번 가게로 가니 덕장에 7일째 말리고 있는 약대구 5마리가 보인다. 3개월 말려야 하는데 그때는 가격이 두 배로 뛴다.
이 약대구는 갈무리했다가 값이 좋아지는 하절기에 출하를 시작한다. 통영권 아녀자들은 '앉은 장사'란 이름으로 판매전에 뛰어들었다. 특히 옛날 거제에는 감나무에 약대구를 널어놓고 그 위에 짚으로 비가림 지붕을 달아주었다.
일단 배를 가르지 않는다. 뱃속에는 어란만 남겨둔다. 나머지 공간에 또 다른 어란 1쌍을 채워 넣고 내장이 있던 자리에 소금을 채워 통째로 3~4개월간 황태처럼 묵힌다.
식생활문화 연구가인 김영복 씨는 "약대구는 동지 전후 산란 전의 통통한 알배기로 해야지 알이 방출되기 전 물알로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1월15일부터 1달간 금어기
대구 절정기는 1월인데 금어기와 겹쳐진다. 잡는 방식은 고정식인 호망, 이동식인 자망이 있다.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자망은 이 기간 포획이 금지하지만 호망은 인공수정을 위해 허가된다. 대구는 1970년대부터 어획량이 급감하고 80년대부터는 인공방류사업을 시작한다. 90년대 귀할 때는 마리 당 30만~40만 원일 때도 있었다. 요즘은 10kg 급이 10만원선.
지난 15일부터 금어기. 배 한 척당 잡을 수 있는 숫자도 100마리 내로 줄어든다. 그리고 2월이면 남해안 해쑥이 돋아나기 시작하며 그럼 봄도다리쑥국이 통영~거제권에서 발화를 한다. 진해만 수역 해수 온도가기 시작하면 대구는 북상 준비를 한다.
갈수록 온난화 때문에 대구 물량이 들쭉날쭉 한다. 일부 몰지각한 어부는 술안주용 노가리(명태) 대신 대구 새끼를 잡아 노가리로 둔갑시켜 불법 유통시키는 실정이다.
◆곤이, 이리, 애
곤이(騉鮞)는 물고기의 알(난자), 그리고 이리는 생선의 정자를 만드는 정소(精巢), 그리고 애는 생선의 간(肝)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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