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인류세(Anthropocene)'는 네덜란드 출신 노벨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이 2002년 처음 쓴 용어다.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계가 급격히 변하게 됐고, 그로 인해 지구 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라는 것.
방정아 작가는 바로 그 인류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과 이웃 주민들의 평범한 순간을 초현실적인 리얼리즘 회화로 그려낸다.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외면하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경쾌한 색과 선으로 표현하고, 추상적인 요소와 상상력을 더해 현실의 문제를 녹여낸다.
특히 그의 작품은 지구 환경을 훼손하며 현재에 충실한 인간의 모습, 변화된 환경 속에 좀비화 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인간 모습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색채와 일상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불안이 맞물리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에 들어서면, '월성'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 너머로 길이 7m의 거대한 천에 그려진 대형 작품 '핵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 '죽는 게 소원인 자들'이 걸려 있다.
이 세 그림 속에 숨겨진 키워드는 '원전'. '월성' 작품은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린 것으로, 전통 가옥들이 송전탑과 전선에 둘러싸인 모습이다. '핵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 역시 돔 형태의 원전 건물과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띈다. '죽는 게 소원인 자들' 작품은 핵연료봉 같은 것을 들고 있는 '핵좀비'들이 서로를 괴롭히는 모습이다.
허정선 미학박사(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작가는 탄소를 줄이고 고효율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원전 옹호자들의 명분과 자본, 권력의 연합이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생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신랄하게 고발한다"며 "원전 옹호자든 반대자든 핵좀비 바이러스에 피폭되면 먹이사슬처럼 인류세를 피할 수 없는 공생공멸의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가 발언하는 현실은 알고 있지만 어쩌면 잊고 싶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우리의 일상과 함께 자라온 불안과 위기의 싹들"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전시실에서는 '스스로 가두기', '잠시 디오니소스', '눈 가리고 입 막고' 등 답답한 현실의 출구를 찾는 현대인의 정신·심리적 징후를 시각화한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김영숙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작가는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불안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느낀 것을 일기장에 기록하듯 그리기 수행을 해왔다"며 "특유의 시각 언어에 담긴 얘기를 통해,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하길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24일까지. 053-422-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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