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프랑스 파리(Paris)의 카페는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다. 그래서 파리하면 떠 올리는 것 중의 하나가 카페 문화다. 대표적인 카페라면 시인과 철학자 그리고 화가들의 아지트였던 마고(Les Deux Magots)를 들 수 있다. 그 이유는 카뮈와 헤밍웨이, 사르트르, 피카소가 자주 방문하던 역사적인 곳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문화예술의 변화를 이끌었던 젊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했던 장소라는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카페문화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던 입체주의 미술가와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예술가 그룹 역시 정기적으로 몽파르나스의 오래된 카페에서 만나 열띤 토론을 했었다. 동시대의 선배 예술가였던 브라크와 피카소의 입체파를 능가하는 미술을 위해 미래파 화가들이 시인과 함께 모였던 아지트도 파리의 카페였다. 어느 나라나 카페는 과거나 지금이나 예술가의 아지트가 되고 있다. 집과 학교를 나오면 누구에게나 차나 커피 한 잔으로 자유로운 곳이 카페이기 때문이다.
대구의 카페 역시 다양한 문화를 생산하는 장소였다. 내가 청년 시절 종종 다녔던 대구의 카페 '25시'와 '시인'은 당시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20~30대의 젊은 시인, 소설가, 화가들이 하나 둘 모이면 난상 토론이 이어졌다. 그 시절 '시인'과 '25시'는 대학의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서 경험할 수 없는 현장예술을 보고 듣고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모인 카페에서 나눈 난상토론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느낀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처이자 정서적 공감으로 보상 받는 시간이었다. 카페는 내게 있어 예술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문득 문득 파고드는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내 삶을 응시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처럼 카페는 스스로 새로운 지혜를 낳을 수 없어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산파에 비유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경험했던 장소가 내겐 카페였다.
요즘 카페에 가면 이어폰 낀 카공족(카페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식당에는 혼밥, 카페에는 혼공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도서관의 정적 속에서 느끼는 무중력의 무게감에 비해 카페의 백색소음이 주는 자유로운 환경을 보다 선호하고 익숙해진 세대들이다. 종종 여러 명이 모여 조별과제를 위한 토론 풍경을 보면서 백년 넘는 시간을 거슬러 파리의 카페에서 시인과 화가들이 모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예술로 열띤 토론을 상상하며 우리의 백년지기 카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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