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유대인 2천5백년 디아스포라 역사

입력 2023-10-20 14:30:00 수정 2023-10-20 18:29:13

"전쟁은 언제나 약한 사람보다 선량한 사람만 죽인다"

통곡의 벽과 황금 사원. 유대인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통곡의 벽과 황금 사원. 유대인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10월 7일, 이스라엘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세력인 하마스가 이웃 유대인 도시를 공격했다. 음악회를 즐기던 260여명의 선량한 시민이 숨지거나 다쳤다. 기습공격에 허를 찔린 이스라엘 정부도 보복 공격을 폈다. 10월 17일 가자지구 병원에서 500여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 110만명에게 가자 지구를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가자 지구 재점령을 위해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보따리를 싸 고향을 떠나는 행렬에 과거 유대인들이 강제로 삶의 터전 유대 땅을 떠나야 했던 2천5백여년 디아스포라(Diaspora, 강제 이주) 수난사가 겹쳐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뒤섞이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남의 일 같지 않게 바라보며 B.C 5세기 그리스 최고의 희곡작가 소포클레스의 명언을 반추해 본다. "전쟁은 언제나 악한 사람보다 선량한 사람만 죽인다"

시나이산 일출. 풀 한포기 찾기 어려운 황량한 지형이 잘 나타난다.
시나이산 일출. 풀 한포기 찾기 어려운 황량한 지형이 잘 나타난다.

◆모세가 야훼의 언약궤를 받았다는 시나이 산

지금은 고인이 된 액션 영화배우 숀 코너리. 1962년 007 시리즈 1편 [닥터 노]를 통해 제임스 본드 역으로 영화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그가 1986년 수도사역을 맡았던 영화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원작인 이 영화 촬영지는 이집트 시나이 반도 남부 시나이산 성 캐더린(St. Catherine) 수도원이다. B.C6세기 건축됐다. 23년 전 여름 이곳을 찾았다.

근처 숙소에서 새벽 1시 30분 모닝콜을 받고 산행을 시작했다. 칠흙같은 어둠에 먼지 풀풀 날리며 한참을 올라 정상에 이르렀다. 한여름이지만 사막의 새벽은 한기를 느낄 정도다. 마침내 멀리 동쪽 하늘에서 붉은 태양이 솟고, 환한 햇빛 아래 드러난 대지는 온통 황토색 황량한 돌산뿐이다.

이곳에서 야훼가 모세에게 언약궤, 일명 십계명를 전했다고 구약성경 출애굽기는 전한다. 이집트에서 유대민족을 이끌고 나온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한다.

네보산 구리 불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 형상으로 만들었다. 신구약의 융합.
네보산 구리 불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 형상으로 만들었다. 신구약의 융합.

◆모세가 죽은 네보산, 여호수아 인도로 여리고 차지

모세가 도착한 곳은 오늘날 요르단의 네보(Nebo)산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을 이루는 사해(Dead Sea) 동쪽이다. 네보산 정상에 오르면 6세기 이후 교회로 사용된 모세 기념교회가 맞아준다. 교회 앞마당에 서면 구리 불뱀이 혀를 내민다. 구약 민수기에 보면 야훼가 불뱀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에 피해를 입힌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야훼가 구리 불뱀 처방전을 내린다.

이에 모세가 구리 불뱀을 만들어 뱀에 물린 사람을 고쳐준다. 이를 기념한 구리 불뱀 기둥은 신약의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디자인을 따랐다. 신구약의 융합. 구리 불뱀 기둥 너머로 사해, 젖과 꿀이 흐르는 여리고(Jericho)가 한눈에 펼쳐진다. 사마리아 지방 갈릴리 호수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 요단강은 사해로 흘러든다. 높은 염분 함량의 사해 입구에 여리고가 자리한다.

여리고 시카모어 나무.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 세무공무원 자케우스가 올라갔던 나무다.
여리고 시카모어 나무.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 세무공무원 자케우스가 올라갔던 나무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 한가운데 기적같은 오아시스다. 여리고에서는 B.C 6천여년 토기와 조각 등이 출토된다. 인류의 신석기 농사문명 주요 기원지 가운데 하나다. 여리고에 가면 잎이 무성한 시카모어 나무를 만난다. 키 작은 세무공무원 자케우스가 군중 사이로 예수그리스도를 보기 위해 올랐던 나무로 전해진다.

모세는 여리고에 이르지 못하고 네보산에서 죽는다.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로 유대인을 인도한 인물은 여호수아라고 구약 여호수아서는 전한다. 그 유명한 땅밟기를 통해 비옥한 오아시스 여리고를 빼앗는다. 이후 B.C11세기 말 사울이 최초의 유대국가 이스라엘을 세운다.

다윗. 미켈란젤로가 1504년 피렌체 공화국의 상징으로 조각했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갤러리
다윗. 미켈란젤로가 1504년 피렌체 공화국의 상징으로 조각했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갤러리

◆다윗과 아들 솔로몬 때 예루살렘 수도 대성전 건립

이탈리아 르네상스 상징 도시 피렌체로 가보자. 중세 피렌체 공화국 청사 입구에 알몸의 남자가 시뇨리아 광장을 응시한다. 1504년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피렌체 공화국의 의뢰를 받아 조각한 다윗이다. 진품은 근처 아카데미아 갤러리에 모셔놨다.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물리친 다윗이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다.

솔로몬이 건축한 대성전 모형. 이스라엘 박물관
솔로몬이 건축한 대성전 모형. 이스라엘 박물관

다윗은 꾀가 많았다. 부하 장군을 멀리 보내 전사시키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가로채 아들 5명을 낳았으니 말이다. 밧세바가 낳은 아들 가운데 솔로몬이 왕위를 잇는다. 솔로몬은 야훼에게 바치는 대성전을 예루살렘에 짓는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 야외 정원에 큼직한 모형이 손짓한다.

실물도 볼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 시대 헤롯왕이 재건했던 성전 서쪽 벽면 일부가 서쪽벽(Western Wall) 혹은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란 이름으로 남았다. 지금도 많은 유대인이 이곳을 매일 찾는다. 유대인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B.C10세기 솔로몬이 죽은 뒤, 나라가 북쪽의 이스라엘, 남쪽의 유대 왕국으로 나뉜다.

사르곤 2세. 오른쪽이 사르곤 2세다. 유대인 1차 디아스포라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루브르 박물관
사르곤 2세. 오른쪽이 사르곤 2세다. 유대인 1차 디아스포라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루브르 박물관

◆신 아시리아 제국 사르곤 2세 B.C722년 1차 디아스포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전시실에 신아시리아 제국(B.C934년-B.C612년)시기 수도 두르샤르킨(현재 코르사바드)에서 출토한 조각이 기다린다. 사람 얼굴에 황소, 독수리를 합친 형상의 수호신 라마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옆에 사르곤 2세가 수염을 흩날리며 위엄을 뽐낸다. B.C722년 사르곤 2세는 유대인의 북쪽 나라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을 끌고 간다.

유대 역사에서 첫 디아스포라다. 루브르의 사르곤 2세 궁정 벽면 조각들은 아마도 이때 끌려간 유대인들의 피와 땀이 스민 결과일지도 모른다. 신아시리아 제국은 사르곤 2세의 손자 아슈르바니팔(B.C669-B.C627) 왕 때 절정으로 발전하고 급속히 쇠락을 길을 걷는다.

◆신 바빌로니아 제국 네부카드네사르 2세 B.C587년 2차 디아스포라

독일 수도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 한가운데 박물관섬이 자리한다. 19세기 조성된 박물관섬 가장 북쪽에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가보자. 튀르키예의 헬레니즘 도시 페르가몬을 발굴해 가져온 유물로 가득하다. 메소포타미아 신바빌로니아 제국(B.C625년-B.C539년, 칼데아 제국) 수도 바빌론에서 발굴해온 이슈타르 게이트의 쪽빛 타일이 눈부시다.

유대인 2차 디아스포라를 일으킨 신바빌로니아 제국 네부카드네사르 2세의 바빌론 이슈타르 게이트.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유대인 2차 디아스포라를 일으킨 신바빌로니아 제국 네부카드네사르 2세의 바빌론 이슈타르 게이트.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B.C612년 신아시리아제국을 무너트린 나보폴라사르의 아들 네부카드네사르 2세(느브갓네살) 유적이다. 네부카드네사르 2세는 B.C587년 유대인의 남쪽 나라 유대 왕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을 수도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 바빌론의 유수(幽囚), 2차 디아스포라다.

네부카드네사르 2세가 유대를 정복한 이야기를 담은 쐐기문자 점토판. 대영박물관
네부카드네사르 2세가 유대를 정복한 이야기를 담은 쐐기문자 점토판. 대영박물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는 네브카드네사르 2세를 가리킨다. 오페라 소품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끌려간 유대인들의 노래다. 1970년대 인기를 모은 보니엠의 [바빌론 강가에서]는 바빌론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유대인들이 고향 시온산을 그리는 노래다. 구약 시편에 나오는 내용을 가사로 삼은 거다.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135년 유대인 최종 디아스포라

신바빌로니아 제국, 페르시아제국을 거쳐 유대 땅은 알렉산더의 그리스 손으로 넘어간다. 이어 B.C63년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약탈하면서 로마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유대인은 로마에 대항해 3번의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1차는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다. 사막 요새 도시 마사다 최후 항전은 73년 무참히 진압된다.

마사다 모형. 73년 로마에 대항해 독립투쟁을 벌였던 유대인 1차 항쟁 거점이었다.
마사다 모형. 73년 로마에 대항해 독립투쟁을 벌였던 유대인 1차 항쟁 거점이었다.

트라야누스 황제 때 115년 알렉산드리아 거주 유대인이 일으킨 저항도 막대한 희생 끝에 실패한다. 이때 대대적인 유대인 학살이 벌어져 지중해 최대 경제도시 알렉산드리아의 힘이 약해진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3차 최종 저항이 펼쳐진다. 유대 최고 랍비이던 아키바가 시몬 바르코크바를 구약 민수기 24장에 나오는 메시아로 선언하면서 독립의 불길이 타올랐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135년 유대인 항쟁을 진압하고 유대인을 유대 땅에서 완전히 추방시켰다. 이후 1800여년 동안 유대 땅에 유대인은 살 수 없었다. 로마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
하드리아누스 황제. 135년 유대인 항쟁을 진압하고 유대인을 유대 땅에서 완전히 추방시켰다. 이후 1800여년 동안 유대 땅에 유대인은 살 수 없었다. 로마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

불은 3년만인 135년 꺼졌다. 로마는 유대인의 저항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모든 유대인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유대인 없는 유대 땅의 탄생이다. 유대 땅에 다시 유대인이 등장한 것은 1천800여년 지나서다. 19세기 말 시오니즘(Sionism), 즉 예루살렘 시온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생겨났다.

1914년 터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정책이 시오니즘에 불을 붙였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이 본격화되면서 기존에 살던 아랍인과 갈등이 생겼다. 중동의 화약고는 그렇게 태어났다. 이후 전개된 역사는 다음 기회에 다룬다.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