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가인 푸치니(1858~1924)는 4대에 걸친 작곡가 및 오르간 연주자의 후손으로, 1858년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루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실패한 오페라 작곡가였음에 반해 푸치니는 1881년부터 오페라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의 성공으로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다 드러난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이 남자는 그 많은 돈으로 뭘 했을까?
제일 먼저 그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사치우콜리 호숫가에 별장을 지었다. 다음으로 그가 한 일은 거금을 들여 멋진 자동차를 사는 것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첫 번째 자동차는 고속 자동차 컬렉션 중의 하나인 드 디옹 부통의 '5 CV'이었다.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였던 드 디옹 부통은 한때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작업체였으며 차량의 품질과 내구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20대가 넘는 자동차를 소유했었으며, 운전기사 없이 직접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연유인지 1902년에 발행된 자동차 클럽 회원들을 위한 잡지의 '자동차와 예술'이라는 특집 기사에 운전대를 잡고 흥분한 모습의 푸치니 사진이 실렸다.
푸치니가 두 번째로 구입했던 차도 녹색으로 마감된 프랑스의 '클레멘트 베이야드'이었다. 1903년에 그는 이 차로 야간 드라이브를 즐기던 중 루카에서 5마일 떨어진 도로에서 미끄러져 전복 사고를 냈으나 다리만 부러지고 목숨은 건졌다. 운전을 좋아했던 푸치니는 빠른 속도를 즐겼고, 별장이 있었던 토레 델 라고의 해변 루트를 따라 운전하다가 과속으로 여러 번 적발되어 벌금을 물었다는 경찰 기록이 남아 있다.
푸치니에 관해 연구했던 어떤 학자에 따르면, 자동차광이었던 푸치니는 자동차에 대한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강력한 엔진 소리, 자동차 기술, 차체의 독창성과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기술 애호가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최초의 SUV를 만들도록 의뢰한 사람도 푸치니다. 그는 휴가용 고급 자동차인 자신의 이소타 프라스키니가 사냥 다닐 때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여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업체인 란치아에 비포장도로용 SUV를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1909년에 푸치니는 자신의 작품 중 하나를 초연하기 위해 뉴욕에 갔다. 기계에 대해 어린아이 같은 열정을 가졌던 그는 미국이 첨단 기기와 기계의 천국임을 이때 알게 됐고, 동시에 스피드보트에 대한 열정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보트를 주제로 다루는 어떤 잡지의 기사를 보면, 뉴욕 5번가를 거닐던 그는 상점에서 크기는 작음에도 가격이 엄청 비싼 스피드보트를 발견했는데, 리코셰라고 불리는 이 보트는 세계 최초의 수중익선 중 하나였다. 푸치니는 이걸 너무 가지고 싶었기에, 이탈리아로 배달시켰고, 이 보트로 마사치우콜리 호수를 쾌속으로 가로지르며 놀았다.
1910년 12월 10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서부의 아가씨'를 초연할 무렵에 푸치니는 그의 4척의 요트 중 첫 번째인 대형 증기엔진 요트를 구입하고, '나비부인'의 여주인공 이름을 따 '쵸쵸상'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잘 나가던 푸치니도 시대가 어려워지고 그의 후기 오페라들의 인기가 떨어지자 '쵸쵸상'을 팔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선외(船外) 모터가 달린 소형 보트만 그에게 남았었다. 골초였던 그는 65세에 인후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자동차와 요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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