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얼마나 버세요?" 얼마 전 타 대학 의과대학교수가 학생과 진로상담을 하던 중 학생이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동료 교수는 "벌 만큼 번다"라고 답했지만 MZ 세대 학생의 당돌함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필수·중증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과 지역 불균형은 이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은 의사가 꿈인 나라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앞다퉈 의대를 가려고 하니 건강한 한국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한국의 의료는 건강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병들어 가고 기형적으로 변하고 있다. 무엇이 한국의 의료를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46세에 지방의대 신입생이 되었다는 직장인의 사연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서울 명문대를 나와서 17년간 몸담은 대기업 생활을 그만두고 의대로 향했다는 사연은 일반적이지 않을뿐더러 그 이유가 늦둥이 딸을 위한 안정적인 수입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의대를 입학한 학생의 80% 이상이 재수 또는 삼수생 이상이라고 한다. 젊고 활기가 넘치는 일반대학과는 달리 의과대학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마치 이전에 사법고시 합격을 위해 수년 동안 N수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대의 병폐가 되풀이되는 듯하다.
이 많은 '유턴족'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의대 장수생 증가 풍조는 서울의 유명 대학교나 과학기술원들의 중도 탈락자 수 증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2022년 이른바 SKY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진학하고도 중도 포기를 한 학생 수는 1874명이며 이는 2020년 1337명, 2021년 1542명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과학고를 거쳐 4대 과학기술원에 진학한 학생들 중에서 중도 탈락한 학생이 지난 5년간 1006명에 달했다. 물론 이들이 모두 의대에 진학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상당수가 의대에 진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왜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과학도의 꿈을 버리고 의대로 향한 것일까? 아마도 최근 이공계 연구비 지원을 포함한 병역특례가 줄었고, 10년 이상 석·박사를 하면서 더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의대를 간 친구들에 비해 임금 및 사회적 평판이 낮고 고용이 불안한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컷을 것으로 생각된다. 직업의 가치를 소득에 따라 서열화하는 풍조, 특정 직업의 소득에 대한 진위를 알 수 없이 과대 포장된, 오직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언론의 낚시성 기사들은 성실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이공계 엑소더스'는 많은 부분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필수의료 엑소더스'와 닮은 꼴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인체를 탐구하고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일로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의대 블랙홀'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의대를 졸업한 학생 중 많게는 5~10%의 학생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의나 전공의 과정을 포기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 '생계형 의사'의 출현은 의료를 더욱 왜곡시킬 뿐이다. 한국의 왜곡된 의료환경의 이면에는 이런 철학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의사수를 늘려 필수·중증의료 분야의 의사 수 부족과 지역 불균형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교수에게 얼마를 버느냐고 묻는 '생계형 의사'를 1000명 더 추가로 배출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차라리 필수의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지금도 홀로 말없이 지역을 지키느라 지쳐 가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그들이 지키고 있는 가치에 대한 합당한 예우와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이탈을 막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 아닐까?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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