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재봉 칼럼] 아웅산 묘소 테러 40주기

입력 2023-10-15 16:42:10 수정 2023-10-15 18:02:31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함재봉
함재봉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지난 10월 9일은 선친 함병춘 박사의 40주기였다. 40년 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셨던 아버님은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여 버마(오늘의 미얀마)를 방문하던 중 북한 괴뢰 도당의 테러로 순국하셨다.

당시 아버님은 51세셨다. 함께 순국하신 서석준 부총리는 45세, 이범석 외무부 장관은 58세, 김동휘 상공부 장관은 51세, 서상철 동자부 장관은 48세, 이계철 주버마 대사는 54세, 김재익 경제수석은 45세,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은 47세, 이기욱 재무부 차관은 46세,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은 48세,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은 54세, 심상우 의원은 45세,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는 54세, 이재관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43세, 한경희 대통령 경호실 경호원은 31세, 정태진 경호원은 32세,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는 34세셨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왜 버마 순방길에 올랐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왔지만 솔직히 어처구니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음모론과 억측들뿐이었다.

당시 한국이 처한 상황은 오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혹했다. 소련이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미국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면서 냉전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소련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시작한다. 미국의 기술력을 따라가는 것이 버거웠던 소련은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1983년 9월 1일, 소련은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시키면서 무고한 민간인 269명이 목숨을 잃는다. 아웅산 테러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의 이중고에 허덕이고 있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배럴당 3달러였던 석유는 1973년 OPEC의 석유 금수 조치로 배럴당 12달러로, 1979년 이란혁명으로 35달러로 10배 이상 치솟는다.

한국 경제는 1974년 개인소득 500달러, 1977년 1천 달러를 간신히 돌파한다. 그러나 석유파동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대규모 중화학공업 투자가 부실을 낳고 정치 불안으로 투자마저 위축되면서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1979년 인플레는 21.4%에 달하고 1980년 경제성장률은 -2.1%로 떨어진다.

한국의 안보와 정치도 최악이었다. 1971년에는 주한미군의 주력 7사단이 철수하고 1974년에는 미국이 월남에서 패망했으며 1976년에는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1979년에는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고 이어진 12·12 쿠데타와 1980년 광주 사태로 국내 정세는 격랑에 휩쓸린다.

1981년 집권한 전두환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인권 문제 등으로 최악으로 치닫던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한편 비동맹권 국가들과의 수교를 통해 외교적 돌파구를 모색한다. 1983년 당시 북한은 110개국과, 한국은 100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었다. 북한은 특히 114개국이 참가하고 있던 비동맹권 국가들 대부분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다. 반면 비동맹권은 대한민국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전두환 정부가 비동맹권국들을 순방하기로 한 것은 북한 외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순방의 첫 기착지는 동남아 비동맹권 국가의 대표였던 버마였고 마지막 예정지는 비동맹권의 맹주였던 인도였다. 북한이 테러를 감행하면서까지 순방을 막고자 한 이유다.

아웅산 테러 이후 버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4개국이 북한과 단교한다. 북한 정권의 잔인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북한은 외교적 고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아버님을 비롯한 17분이 목숨을 바쳐 가면서까지 얻어냈어야 할 성과인가? 생각할수록 이분들을 지켜드릴 정도의 경호조차 펼치지 못한 나라의 수준이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 대한민국의 수준이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나라 수준이 형편없던 때도 목숨을 바쳐 나라를 일으키고자 했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웅산 묘소 순국선열은 대한민국 정부가, 사회가 잊고 외면했다. 40주기를 맞아 정부가 공식적인 추모식을 마련해 주었으니 만시지탄이지만 고맙다. 다시 한번 이역만리 땅에서 산화하신 순국선열의 명복을 빈다. 아버님,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