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지난 9월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본관에 대법관 13명, 각급 법원장,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이 총출동했다. 6년간의 임기를 마친 김명수 대법원장의 퇴임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판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과 연루되면서 사퇴하고, 16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대법관 경력 없이 일반 판사 경험이 고작인 그가 대법원장으로 직행한 것을 두고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파격적인 인사였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의 취임 자체가 사법부의 개혁을 상징한다며 사법개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전임 대법원장의 행정권 남용은 결국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를 대폭 축소하고 사법부의 관료화 해소를 통해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행정 권한과 인사제도 개편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 그의 사법개혁의 핵심이었다.
재임 기간 그가 추진했던 개혁 중에는 당연히 칭찬도 있고, 비판도 있다. 기존 사법부의 관료화 해소에 대한 노력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만성적 '재판 지연' 등 사법 시스템의 실패를 초래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대법원장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가 유난히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점이 특이하지만, 자리에서 물러난 우두머리에 대한 평가는 늘 엇갈리게 마련이니, 그의 '치적'만 말하고 싶다.
김 대법원장의 가장 큰 치적은 바로 그가 대법원장으로서 국민에게 보여준 모습 그 자체이다. 그는 대법원장도 우리와 다를 게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여 주었다.
인류사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 대문호, 과학자들은 인간의 본성(nature)에 대해 공통적으로 두 가지 점을 지적한다.
첫째, 인간은 자기애를 가지고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하는 이기적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기심'(self-interest)만큼 억울한 말이 없다.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고 오직 자기만 생각하는 못된(?) 것으로 곡해하기 십상이다. 이기심의 진정한 의미는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기심은 도덕적,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장은 어떨까? 당연히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하고, 자기 이익에 관심이 있다.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보직에 가고 싶고, 더 빨리 승진하여 부장판사, 대법관, 그리고 대법원장이 되고 싶어 한다. 또한 인간은 천사가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부정행위를 하고 거짓으로 기만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무리수를 두어 이권에 개입하는 불법을 저지르기도 한다.
둘째,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성과 지식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한 인간이 가진 지식이란 한 줌 안에도 채 차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적다. 따라서 인간이 무언가를 미리 완벽하게 예측하고 계획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제 아무리 당대의 석학이라고 해도 얼마 안 되어 벌어질 미래를 예측하는 데 번번이 실패한다. 20세기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사무엘슨은 당시 소련의 계획경제가 미국의 시장경제를 추월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처럼 대경제학자조차 소련의 붕괴와 사회주의 종말을 잘못 읽고 치명적인 오판을 내린 것이다. 인간의 지식의 크기는 보잘것없을 정도로 하찮고 그 무지는 무한대에 가깝다. 대법원장도 예외일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해야 하는 것(되어야 하는 것)과 하는 것(되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대법원장이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과 실제로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재판관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규범적이고 당위적인 말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희망 사항'에 가깝다. 반면, 후자는 우리의 관찰과 경험을 통해 결정된다는 성격이 있다.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통해 그가 공정한 판단을 하기도, 못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미신. 아무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진실을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재임 동안 재판관은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일 거라 믿는 국민들의 미신을 깨고 매우 평범한 '인간적인' 진짜 모습을 보여준 치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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