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서 학창 시절을 이곳 대구에서 보낸 필자는 문화예술본부장이라는 직책을 핑계 삼아 지난달 몇 번에 걸쳐 대구 역사의 흔적과 대구 정신이 녹아 있는 시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대구의 깜짝 놀랄 만한 점 몇 가지를 적어 본다.
대구는 분지가 아니다: 그때는 대구가 사방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분지이며, 그래서 사람들이 고집스럽고 무뚝뚝하며,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운 것도 바로 그 때문으로 알았다. 그런데, 대구 지역은 동서로 흐르는 금호강이 낙동강과 만나 평야가 발달했고, 일찍이 조선 영남대로와 경부철도가 지나가는 개방되고 열려 있는 도시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서문시장과 약령시가 생겨나고 전국의 물산과 사람들이 대구로 몰려오고 나가는 상업 도시였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시간의 흔적 대구역: 그때는 대구역을 서울과 부산으로 가는 통일호 열차가 서는 기차역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일제강점하에 대구역이 생긴 이래 서울까지 가는 시간이 걸어서 13일에서 기차를 타고 11시간으로 엄청나게 줄어들게 된 것을 이번 기회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은 KTX를 타고 두 시간이면 서울까지 갈 수 있고 앞으로 이 시간도 얼마나 더 단축될지 눈여겨볼 일이다. 더 이상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지리적 위치와 시간적 격차는 의미가 없는 일이다.
대구형무소의 역사적 비극: 그때는 3·1운동이 서울 파고다공원과 천안 아우내 장터 등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간 줄 알았다. 그런데 구 대구경찰서와 구 대구감옥 등을 둘러보고 대구가 전국에서 가장 극렬하게, 가장 체계적으로 그리고 가장 광범위하게 일제에 저항했던 사실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서울의 서대문형무소보다 그 인원이 많은 206명의 애국지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현장의 기록을 보면서 아연실색하였다. 이런 대구의 저항 정신에 바탕을 두고 연극과 영화, 그리고 오페라와 뮤지컬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문화 콘텐츠를 더욱 많이 개발하고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연구 대상-대구의 극장 문화: 그때는 대한극장과 대도극장 그리고 시내에 위치한 한일극장, 제일극장, 만경관, 아세아극장, 아카데미극장 등의 극장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알게 된 것은 대구 지역에는 시내의 주요 거점 지역마다 극장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국내외적으로 특이해 세계적으로도 연구 대상이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의 극장으로는 주요 극장 외에 송죽·수성·신도·신성·남도·현대·동신·피카디리·오스카·스카라·대구·중앙·자유극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대구의 전통시장, 그 끈질긴 생명력: 그때는 대구에 서문시장과 남문시장이 있고 이 밖에도 지역마다 드문드문 이름 모를 시장들이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살펴보니 대구에는 사람 사는 곳곳마다 전통시장이 함께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았다. 대구에는 사람 냄새 자욱한 전통시장이 유별나게 많고, 각자의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서 이방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칠성·번개·범어·역전·봉덕·서남·대명·효목·서부·성당·방촌·만촌시장 등 160여 개의 전통시장이 그것이다. 이들 전통시장을 활용한 체험형 관광 프로그램의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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