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패권 싸움에…K-반도체만 등 터졌다

입력 2023-09-17 16:54:53 수정 2023-09-17 19:36:49

메모리 수출 비중 높은 中 제재…16년간 '대중 투자 올인' 결과 삼성전자·하이닉스만 치명타
답은 시스템 반도체…쳇GPT 출현 기술발전 앞당겨
AI·IoT 결합, 첨단산업 주도…2025년까지 年 7.6% 고성장

중국 상하이 한 건물에 화웨이 신형 스마트폰 광고물이 부착돼 있다. 최근 화웨이 스마트폰에 SK하이닉스 반도체가 탑재됐다는 보도로 논란이 일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상하이 한 건물에 화웨이 신형 스마트폰 광고물이 부착돼 있다. 최근 화웨이 스마트폰에 SK하이닉스 반도체가 탑재됐다는 보도로 논란이 일었다.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제재 이후 화웨이와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내놨다. 연합뉴스

반도체 기술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는 단순한 제품이 아닌 핵심 안보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분야로 평가된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려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균형 성장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 순위는 인텔에 이어 2위다. 지난해 3분기 1위 자리를 내준 뒤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SK 하이닉스는 3위에서 6위로 떨어졌다. 반면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엔비디아는 실적이 크게 향상돼 9위에서 3위로 뛰었다. 퀄컴과 브로드컴은 각각 4·5위를 차지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둔화로 한국 기업들은 실적이 떨어진 반면, 시스템 반도체 기업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경기 변동에 따른 수요 감소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다품종 주문생산 중심으로 불확실성이 낮고 첨단산업과 연계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통해 미래 산업의 주도권 확보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국가별 반도체 수출. 한국은행 제공
한국의 국가별 반도체 수출. 한국은행 제공

◆ 미·중 반도체 전쟁에 등 터지는 K반도체?

미국·중국 무역분쟁의 중심에는 반도체 공급망이 있다. 중국 최대 IT기업 화웨이에 대한 제재로 중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산업 전 분야에 필수 요소인 반도체 수급 및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가장 많은 반도체 원천 기술을 보유한 국가다. 설계와 생산, 패키징(조립 및 검사), 제조장비 등 각 분야별 강점을 지닌 타 국가와 탄탄한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설계 기술, 소프트웨어 EDA는 사실상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

미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통제하면서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에 대한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오늘의 세계 경제-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보고서를 통해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과 동맹국 중심의 첨단 반도체 공급망과 범용 기술에 기반을 둔 중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으로 양분될 것"이라고 밝혔다.

KIEP는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고급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에 큰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으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평가했다. 일련의 조치가 각국의 경제 이해관계와 충돌하고 있어 동맹국 간 협력이 힘들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형곤 KIEP 세계지역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는 미국의 라이선스 결정에 휘둘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입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해외 투자는 2005년을 기점으로 2020년까지 중국에 대한 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업 내 공정 분업화를 위한 투자지만, 현 시점에서는 제재 영향이 우려된다"고 했다.

정 위원은 "첨단 칩 생산을 위해 한국기업들은 중국 외 지역에 신규공장 건설이 필요하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국내 반도체 생산역량 강화 및 반도체 기업 리쇼어링 지원책 강화 등 반도체 제조 허브 전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첨단산업을 이끄는 시스템 반도체 기술

시스템반도체는 정보 처리와 데이터 연산·제어 기능을 수행한다. 사용자의 요구사항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창기에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 조건이 단순했으나 최근에는 응용분야가 다변화되고 복잡해졌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3천456억 달러로 메모리 반도체(1천344억 달러)와 비교하면 2배 이상 크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오는 2025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7.6%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부품으로 통신, 모빌리티, 로봇, 항공우주, 사물인터넷(IoT) 등 활용 범위가 넓어 첨단기술 발전에 필수 요소로 급부상했다. 전자기기, IT제품이 주력 산업인 한국은 구조적으로 시스템 반도체 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의 출현은 시스템 반도체의 수요를 끌어올리고 기술발전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딥 러닝(데이터 학습)을 수행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AI는 기술력이 집적된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개별 반도체의 가격도 높게 형성돼 있고 필요로 하는 양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16년 등장한 구글의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결 당시 CPU 1천202개, GPU 176개를 사용했다.

7년이 지난 현재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오픈AI의 '챗GPT'를 구동하는 데 무려 1만개 이상의 GPU가 사용된다. 이 반도체를 설계한 엔비디아는 생성형 AI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반도체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반도체공학회 부회장)는"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AI 기술의 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AI와 IoT를 결합, 응용한 신기술이 첨단산업을 주도하고 향후 더 큰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며 "반도체 기술을 중요한 안보 자산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 현황. 한국은행 제공
시스템 반도체 시장 현황. 한국은행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