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치열했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시리즈 연재
71년 간 경북 도청 소재지 대구 포정동, 청사 헐리고 공원으로
2·28의거, 4·19혁명…근대화·산업화 맨몸으로 이끈 역사 현장
매일신문 아카이빙센터는 77년 간 한국 근·현대사 현장을 기록한 필름과 사진 700만 장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사진에는 일제강점기, 해방, 6·25전쟁, 민주화, 근대화, 산업화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들의 치열했던 삶의 순간이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이 사진을 엄선해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미공개 사진도 봉인해제 해, 역사를 거울로 내일의 지혜를 찾고자 합니다. 관련 제보와 함께 많은 성원 바랍니다.〈편집자 주〉
1966년 2월 24일 대구 중구 포정동 21번지 경북 도청사. 늦겨울, 한줄기 봄비가 청사 마당을 적시고 갔습니다. 이제 4월 1일 이면 산격동 신청사로 이전할 터. 곧 헐릴 건물이니 다듬지도, 가꾸지도 않아 더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경상감영이 자리한 이곳은 1896년부터 사실상 경북 도청 소재지였습니다. 1895년(고종 32년) 관제 개혁으로 조선 8도가 13도 체제로 재편되면서 경북의 정치,행정 중심지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선화당 등 관찰사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1912년 일제강점기에 선화당 동편에 목조로 도청 본관을 신축했습니다. 7년 뒤엔 본관 동편 청사를, 또 3년 뒤엔 서편에도 건물 올려 ㄷ자형 도청사가 완성됐습니다.
도청 동편 앞 건물은 뇌경관(賴慶館). 서양식 석조 2층 건물로 대구 최초 컨벤션센터, 상품진열소였습니다. 일본 다이쇼(大正) 천황 즉위(1912년) 기념사업으로 1915년에 준공됐습니다. 준공식 날 이곳에선 일본 국가가, 천황 폐하 만세 삼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해방 후 1950년대 들어서는 콘크리트 건물인 도 경찰국과 부속시설이 속속 들어섰습니다. 일제 강점기땐 순사, 이 무렵은 곤봉에 총을 맨 경찰이 그렇게도 무섭던 경찰국가…. 경상감영의 노른자, 선화당 앞마당을 당차게 차고 앉았습니다.
도청 이전을 앞둔 1966년은 '일 하는 해'. 굶지 않게 잘 살아보자고, 근대화로 손발이 바빴습니다. 늘어난 책상, 쌓이는 서류함에 사무실은 꼬불꼬불 미로가 됐습니다. 선화당 마저 커튼을 드리운 채 회계과 직원들로 북적였습니다. 뇌경관도 도리 없이 1층은 도 교육위원회에, 2층은 시립도서관으로 내줬습니다.
"소녹지대를(정경운 청구대 건축과 교수), 관광시설을(김중화 청구대 기계과 교수), 시민 휴식처를(김종환 대구시 건설국장), 종합문화센터·시립도서관·시립수영장을…." 1966년 2월 25일자 매일신문엔 도청 후적지 개발 묘안이 봇물을 이뤘습니다. 결론은 숨쉴 공간, '공원'이었습니다.
1970년 10월 26일, 마침내 중앙공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어른 30원 아이는 10원 입장료에도 줄을 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원을 만들며 감영 유적 선화당, 징청각 만 남기고 싹 들어냈습니다. 도청 건물도 이때 헐렸습니다. 철거비 외 유리창과 전나무 목재 질이 좋다고 쳐준 몸값 3백만원에 팔렸습니다. 포정동 도청사는 이렇게 임종을 맞았습니다. 신축 53년 만입니다.
일제 치욕을 고스란히 치른 곳. 2·28의거 학생들이 곤봉을 마다하고 중앙통을 달려와 정의를 외치던 곳. 마침내 4·19 혁명 시민들이 목 놓아 승리의 함성을 울렸던 곳. 또 박봉을 마다하고 나라 일꾼들이 근대화,산업화를 맨몸으로 이끌었던 바로 그곳…. 건물이 사라지니 역사도 희미해졌습니다.
지금 이곳엔 경상감영 복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달성공원으로 피란 간 관풍루도 머잖아 되돌아 올 예정입니다. 포정동 도청 71년(1896~1966) 역사도 소중한 유산. 지금은 한 점 흔적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빛바랜 필름에서 찾은 1966년 포정동 마지막 경북 도청사. 파월장병을 돕자는 담벼락 게시판에서 시민들은 아직도 발길을 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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