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소설가
서울로 유학을 떠난 대학생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우스개가 있다. 충청도와 강원도 출신 학생들은 서울생활을 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한단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6개월 정도면 말투로 고향을 구분하기 힘들다. 1년 정도가 지난 후 경상도가 고향인 학생들은 자신들이 이제 서울말을 쓰고 '있는 줄' 안단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인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 주로 국어 관련 교양과목을 가르치곤 했는데, 그 시절 나는 '거의 완벽한 서울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거의'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아무리 조심해도 '어'와 '으' 발음이 부지불식간에 뒤섞여 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개그맨 강호동의 말투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 '은지원'을 '언지원', 개그맨 '이수근'을 '이수건'이라고 발음하거나 해산물 '미더덕'을 '미드득'…. 나 역시도 어떤 단어에서 '어'와 '으'를 뒤섞어 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 학생이 깍듯한 표준어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 발음은 턱별해요!"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인지 몇몇 문헌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뚜렷한 원인을 분석한 자료는 없는 것 같았다. 사투리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인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표준어가 왠지 '권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더러 있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패널 중 혼자 사투리를 쓰는 경우는 더 그런 느낌이 강했다. 참석자들이 내 논리에 집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말투가 가진 '주변성'을 바탕에 깔고 '이곳'과 '저곳'의 격차를 인정하라는 식의 미묘한 우월성이 느껴진 적도 있었다. 국가 인구의 절반이 쓰는 말투, 돈과 권력, 기관이 집중된 지역의 말에 대해 지방 사람들이 갖는 부담감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간 참 많은 '시대'가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지방소멸의 시대'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들린 지 오래다. 지방의 많은 학생이 지방을 떠나기 위해 지방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누구도 그들에게 고향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할 수 없다.(대구시민들은 이승엽 두산 감독의 앞날을 얼마나 열렬히 축복해 주었는가!)
내 발음이 '턱별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날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날 '어'와 '으'의 경계를 구분해야하는 삶에 몹시도 지쳐 있었는지 모르겠다. 혹은 내 고향 대구가 많이 그리웠는지도….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렇게 대꾸해줬다. "나는 서울'턱'별시에서는 못 살겠다." 물론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안 그래도 촘촘한 밀도의 서울 사람들 틈에서 태생적으로 경계가 없던 말투를 조심하고 사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는 어느 날에, 홀연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떠나는 이를 어찌 붙잡겠는가. 그보다는 돌아오는 이들이 잘 정주(定住)할 수 있는 지방을 만드는 것이 적어도 소멸을 피하는 '으'쩔 수 없는 정책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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