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마음아, 지역으로 가거라

입력 2023-07-21 12:49:10 수정 2023-07-21 17:18:46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지역 소멸, 서글픈 표현이다. 소멸, 사라져 없어진다는 뜻 아닌가. 사라져 없어지는 게 지역이 아니길 기대하는 마음, 각별하다. 대구, 부산, 광주, 대전과 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수도권 광역시조차도 지역 소멸이라는 표현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다.

지역 소멸은 행정 단위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지역 소멸은 지역에 켜켜이 쌓인 삶의 지층이 통째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지역에 마음을 낼 수 있다면 지역이 우리를 환대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그렇다면 이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어떻게 지역에 낼 수 있을까?

최근의 일이다. 지난 6월 한 달, 목요일 저녁 시간마다 대구 동구 안심도서관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6월은 대학의 학사일정이 여유롭지 않아 매주 출장이 사실 부담이었다. 성적 처리에 보고서 처리에 6월의 시간이 대학교수에겐 한가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안심도서관 출장을 결심했다. 마침 안심도서관이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한 까닭이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 중에 문학 편을 맡았다. 6월 한 달 매주 목요일 안심도서관 출장의 이유가 이렇다.

강의 주제는 이상화, 이육사, 구상, 김원일 등 대구와 인연이 각별한 작가의 장소 체험이다. 장소 체험의 본질은 장소애(토포필리아·topophilia)이다. 작가들의 장소애가 작품 탄생의 동력이라는 건 문학의 상식이다. 이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장소애, 그것은 이들이 지역에 마음을 냈기에 성취할 수 있었던 삶의 기록이다. 결국 나는 이 작가들의 장소애가 우리 모두의 장소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의를 했다.

프로그램 중에는 지역 작가와의 대화도 있었다. 안동의 '원이 엄마' 이야기를 여름꽃 '능소화'로 멋있게 풀어낸 조두진 작가를 초대했다. 6월의 목요일 저녁 시간, 안심습지가 내려다보이는 도서관에서 원이 엄마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건 그 자체가 매혹적인 시간이었다.

마지막 수업은 답사였다. 이육사 시인이 요양한 경주 동남산 옥룡암이 답사지였다. 옥룡암 대웅전 인근 마애불상군 터에서 이육사 시인의 시 '청포도'를 다 함께 낭송했다. 경주의 하늘 위로 청포를 입은 이육사 시인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했다. 그날 답사지에서 만난 수강생의 말이 이러했다. '자신을 변화시킨 게 지역 도서관에서의 배움'이라고. 그 변화란 게 뭘까. 지역을 새롭게, 달리 보게 되었다는 말 아닐까. 지역이 내가 사랑할 삶터로 보이더라는 말 아닐까.

최근의 일이다. 대구 범어도서관에서 수성인문학제의 일환으로 정지아 작가의 문학 콘서트가 열렸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워낙 독자들의 인기를 받다 보니 장내는 독자들로 가득했다. 난 이날 행사의 사회자였다. 사회를 보며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구례의 소설인 점에 주목했다. 정지아 작가가 구례로의 귀향 이후 구례의 자연과 언어,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기에 그렇다.

지역을 걷고, 쓰고, 읽고,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리들의 삶터를 먼저 보기로 하자. 지역 대학과 도서관이 앞장서면 고마운 일이다. 지역 소멸, 재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책에도 한계가 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역에 마음을 내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장소애를 이뤄내는 삶 말이다. 대구와 경북은 충분히 그럴 만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