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예고된 장마였다. 국지성 집중호우 예보가 통보됐지만 재난 대응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예보와 경보가 수없이 울렸지만 막지 못했다. 산사태가 우려되는 지역 주민들에게 미리 대피하라고 문자 통보를 했고 산이 우는 소리도 들렸지만 설마설마했다. 지난해 그 물난리를 겪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안전 불감증'은 국민성으로 굳어진 듯 재난은 되풀이됐다.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10여 년 동안 독일의 침공에 따른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고 "당장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 댔지만 절망감만 느꼈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누구도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고 영국이 독일의 공습에 풍전등화 신세가 되면서 처칠은 수상이 됐다.
장마가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국지성 집중호우를 내리고 피해를 양산하는 동안 정치권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둘러싼 괴담 공방만 벌였다.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과 관련한 특혜 공세도 제기됐다. 장마가 경북 예천·문경과 충청도를 강타하는 동안에도 민노총 보건의료노조가 의료 인력 확충 등을 요구 조건으로 내세워 서울 광화문에 집결, 총파업 투쟁에 나섰다. 주말 이틀간 병원에서는 응급을 제외한 중증환자 수술마저 중단됐고 서울 시내 교통도 마비됐다.
언론·집회·출판·결사의 자유는 헌법 제21조에 규정돼 있지만 교통을 방해하고 수면을 방해하고 소음을 유발하는 등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까지 보장하는 권리는 아니다.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소수의 권리를 깔아뭉개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는 민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봉건·독재사회와 다름없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이 특정인을 위한 특혜라는 의혹을 야당이 제기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허위 주장'이라며 "야당이 사과하지 않으면 고속도로 건설을 백지화하겠다"며 어깃장을 놓는 것도 정부의 적절한 대응은 아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양평 군민과 경기 도민 그리고 국민의 몫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공포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 방침에 대해 반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취지는 이해하더라도 과학자들과 IAEA가 문제없다고 보증한다면 수긍하는 것이 맞다. 우리 바다가 위험해진다며 공포 마케팅을 지속하면 정작 우리 어민과 수산업자 그리고 횟집 사장 등 우리 이웃의 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는다. 후쿠시마 괴담을 퍼뜨리는 야당은 앞으로 우리 바다에서 나오는 수산물을 영원히 먹지 않을 텐가?
정치권에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는지, 며칠만이라도 정쟁 중단에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 정치는 국민을 보듬어주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지, 정부를 공격하고 정치적 상대를 죽이는 전쟁이 아니지 않은가.
국회 국토교통위가 양평고속도로 의혹 관련 현안 질의를 연기하고 법사위 전체회의를 취소하고 당국의 재난 피해 보고도 당장 받지 않기로 했다. 정치권도 후쿠시마 오염수와 양평고속도로 논란이 민생이 아니라 정쟁이라는 건 아는 모양이다.
며칠만이 아니라 장마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여야는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 회복에 나서라. 우리 편만의 민생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민생을 위해서 말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오던 '후쿠시마'와 '양평'이라는 단어 대신 민생이란 말이 들리는 날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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