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민들기'의 저자
동북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저주받았다.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근세에만도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본의 조선 강점,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유럽에서는 2차 대전 후 전쟁에 대한 책임과 반성, 처벌이 이루어지면서 한때 적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적극 참여하면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한다. '마셜 플랜'과 '유럽경제공동체'(EEC) 설립은 전후 유럽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견인한다.
반면 동북아시아는 전후 처리에도 실패한다. 식민지 수탈과 침략전쟁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냉전으로 한국과 중국은 처절한 이념 갈등과 내전 끝에 나라가 분단되는 아픔을 겪는다. 서유럽의 나토와 같은 공동안보 체제, EEC와 같은 경제공동체는 꿈도 못 꾼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앞으로 어느 지역이 경제발전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하는가?'라고 질문했다면 동북아시아라고 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시아는 지난 50년간 역동적인 역내 무역 체계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분업 체계(supply-chain)를 구축하면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공동체를 건설하였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동북아시아가 지정학과 이념 갈등, 역사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경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첫째는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구축한 군사동맹 체제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미안전보장조약'(1951년), '한미상호방위조약'(1953년), '중(대만)미상호방위조약'(1954년)을 통하여 일본, 한국, 대만 등의 안보를 보장해 줌으로써 이 나라들이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는 안보 환경을 제공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당시 중소 분쟁을 겪고 있던 중국의 안보도 보장함으로써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준다.
동북아 경제 기적의 두 번째 요인은 지정학, 역사, 이념을 거부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밀어붙인 지도자들의 출현이었다.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한국의 박정희, 대만의 장징궈, 중국의 덩샤오핑 등은 미국의 안보 보장 속에서 과감하게 군비를 축소하고 부족한 재원을 경제에 투입함으로써 경제 기적을 일으킨다. 역사적 구원(舊怨)과 민족 감정, 이념 갈등에 기반한 국내의 격렬한 반대를 묵살하고 과감하게 이웃 '적성 국가'들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킨다. 한일 국교 정상화(1965), 일중 국교 정상화(1978), 한중 국교 정상화(1992), 양안 관계 정상화(1991)는 동북아 역내 교역량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한편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분업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동북아시아에 활력 넘치는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최근 동북아시아는 역사와 이념, 민족주의와 지정학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최근에 출현하기 시작한 지도자들은 역사 문제를 중시하고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경제발전과 지역통합보다는 과거사 문제, 민족주의, 이념적 순수성, 지정학, 강대국 간의 전략적 경쟁을 강조한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시아에 안정과 번영을 안겨준 미국 주도의 질서도 미국의 패권주의, 제국주의의 발로일 뿐이며 동북아 각국의 민족적 화합과 통일을 저해하고 과거사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비판하며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발전과 지역통합 대신 역사, 이념, 지정학이 지배하는 세계로 회귀하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동북아를 분열과 반목의 시대로 이끄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동북아시아의 해묵은 지정학을 다시 자극하면서 이 지역을 신냉전으로 내몰고 있다.
동북아시아는 기로에 서 있다. 한쪽은 지속적인 경제발전, 지역통합, 세계화의 길이다. 다른 한쪽은 무역 전쟁, 영토 분쟁, 군비 경쟁, 그리고 배타적 민족주의로 회귀, 하향하는 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동북아시아가 이룩한 눈부신 경제발전과 지역통합은 위협받고 있다. 동북아 번영의 비밀을 모르는 무지한 지도자들, 선동가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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