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소설가
어느 영화에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보통의 사람들은 건배를 할 때, '위하여'라고 소리치며 잔을 부딪치고,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은 '이대로'라고 조용히 말하며 잔을 든단다. 인간의 욕망에 관한 많은 의미를 내포한 우스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바라는 것이 참으로 많은 이들이, 술에 취해 자신의 모든 욕망을 뭉뚱그려 담아 내뱉는 서글픈 건배사와 문학의 '환상성'이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오래 전 별다른 교류도 없이 멀리 떨어져 살았던 사람들도 사유에 대한 인식은 참으로 비슷했던 것 같다. 판타스틱과 환상이라는 같은 뜻의 이 두 단어만 비교해 보아도 그 사유의 유사성은 쉽게 드러난다. 판타스틱(Fantastic)은 그리스어 판타제인(Phantasein)에 유래를 두고 있는데, 이는 '없던 것이 나타나 보이다', '착각하게 하다',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환상(幻想)은 허깨비(幻)와 생각(想)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기(奇), 이(異), 괴(怪) 등으로도 표현되었다. 기, 이, 괴는 각각의 현상적 특징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기도 했는데, '기'는 '드물고, 놀랍고, 이상한' 영역을 지칭하며 '이'는 '차이, 구별'의 의미로, '괴'는 '비정상적'인 것에 쓰임을 가졌다.
문학이 환상을 수용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환상이 문학 속에 스미게 되는 계기는 결국 현실의 명확성과 합리성에 가해지는 '균열'이다. 현실의 균열은 소설 속 인물의 욕망과 충돌하면서 인과의 고리가 단절된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게 된다. 예를 들어, 달이 지구의 위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또 둥실 떠오른 대보름달을 향해 두 손을 모아보지 않은 이도 없을 것이다. 합리와 비합리가 충돌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왜 인간은 중력에 매달린 광물덩어리를 향해 두 손을 모으는가? 환상은 인간의 욕망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이 부조리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현실의 명확성과 합리성에 가해지는 균열이다.
몇 해 전 지역의 모 대학에서 '판타지 문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진행했다. 그런데 한 작품을 읽고 각각에 부여된 주제에 따른 과제를 수행한 후 종합 토론을 벌이는 시간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은 '과연 이 작품 속에서 환상은 무엇 때문에 발현되었는가'다. 다시 말해 왜 이 인물 앞에 환상은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대해 학생들의 대부분은 그 이유를 '현실에서의 좌절'로 꼽았다. 물론 문학 속이라는 한정이 따라야 하지만 환상은 현실에서 좌절한 인간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추가되어야 할 한 가지 단서가 있다. 바로 용기다.
현실에서 좌절한 용기 있는 인간 앞에 환상은 나타났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좌절의 이면에 서 있던 환상을 붙잡을 수 있었다. 세상 모든 판타지물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해리포터가 그랬고,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루피와 그의 동료들이 그랬고, 오래 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이 그랬다. 한 인물의 환상적 이야기는 대부분 그렇게 시작됐다. 어딘가에서 소주잔을 들며 '위하여'를 외치는, 수많은 좌절에 봉착한 독자들에게 문학이 보탤 수 있는 미약한 힘은 환상과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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