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민지(MZ)] 천상의 맛을 입 안으로 '샌디레이크'

입력 2023-07-06 14:33:33 수정 2023-07-07 21:01:44

중동풍 창문 문양·소품…현지에 온 것 같은 기분 만끽
한국인 입맛에 맞춰 튀르키예식 모래 커피·카이막 변형

"카이막 드셔보셨어요? 진짜 맛있는데!"

누군가 대뜸 기자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게 뭐죠?"라고 답했다. 나중에서야 카이막이 튀르키예 디저트인 것을 알게 됐다. 요리 연구가 백종원 씨는 카이막을 두고 '천상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이쯤 되니 카이막이 도대체 어떤 맛인지 궁금해졌다. 당장 '대구 카이막'을 검색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카이막'이라 극찬한 교동 샌디레이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 유럽식 외관·중동식 내부 '반전 매력 가득'

샌디레이크 외관. 샌디레이크 제공
샌디레이크 외관. 샌디레이크 제공

'튀르키예 디저트를 판매하니 외관도 중동풍일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샌디레이크 외관은 오히려 유럽 쪽에 가깝다. 통유리창 건물은 바깥에서도 내부를 훤히 보이게 한다. 유리창 너머 보이는 둥근 테이블 덕에 마치 유럽 노천카페에 온 듯한 분위기가 난다.

유럽식 외관과 달리 실내는 중동식이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독특한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둥근 냄비 속 담겨 있는 모래. 놀란 마음을 뒤로한 채 주변을 살피자, 저 멀리서 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는 샌디레이크 이갑서(30) 대표. 이 대표는 냄비를 가리키며 튀르키예식 모래 커피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라고 했다. 그의 말에 '진짜 튀르키예에 온 것 같다'는 생각하면서 카페 안을 찬찬히 살폈다.

샌디레이크 인테리어. 거친 모래색 벽면과 이국적인 도자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홍수현 기자
샌디레이크 인테리어. 거친 모래색 벽면과 이국적인 도자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홍수현 기자

누군가 할퀸 듯한 거친 모래색 벽면과 신기한 모양의 도자기. 양옆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독특한 문양 창문들. 그 아래 놓인 원형 의자. 이 모든 것이 중동의 작은 주택을 옮겨 놓은 듯 이국적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중동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이같이 인테리어 했다고 한다. 그는 "도자기 등 소품, 의자와 테이블 모두 중동풍으로 구입했다. 심지어 2층 창문 문양도 중동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가게 인테리어는 상호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샌디레이크는 '모래에 뒤덮인'이라는 뜻의 샌디와 '호수'라는 뜻의 레이크를 합친 합성어다. 중동 한 가운데 모래사막처럼, 우리의 시그니처는 냄비 속 들어있는 모래다. 모래 위에서 끓는 커피를 호수로 형상화한 것이다. 벽면이 모래처럼 거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고 했다.

◆ 한국식 샌디블랜딩·카이막 탄생기

샌디레이크 이갑서 대표가 제즈베를 이용해 모래 커피(샌디블랜딩)를 만들고 있다. 샌디레이크 제공
샌디레이크 이갑서 대표가 제즈베를 이용해 모래 커피(샌디블랜딩)를 만들고 있다. 샌디레이크 제공

"커피머신이나 핸드드립이 아닌 달궈진 모래를 이용한 커피 추출방식이 매력적이었죠" 이 대표가 튀르키예 커피 추출 방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튀르키예에서는 400도 이상 달궈진 모래 위에서 커피를 추출한다. '제즈베'라는 작은 주전자에 곱게 간 여러 종류의 원두와 물을 넣고, 모래 위에서 끓여내는 방식이다. 압력을 가해 추출하는 커피머신과는 전혀 다르다.

과거 항공사에서 근무했다는 이 대표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다양한 커피를 맛봤다고 한다. 그는 일반 커피 추출방식과 다른 튀르키예식 매력에 빠졌다. 곧장 평소 알고 지내던 튀르키예인 사업가에게 자문했다.

다만, 이 대표는 튀르키예 추출방식 그대로 활용하지는 않았다. 튀르키예에서는 모래 위에서 끓인 커피를 필터에 거르지 않고 함께 마신다. 그래서 간혹 침전된 원두 가루가 입 안에 들어간다. 이에 그는 드리퍼를 사용해 원두 가루를 걸러냈다. 그렇게 침전물 없는 샌디블랜딩 커피가 탄생했다.

튀르키예식 모래 커피인 샌디블랜딩. 향이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은 게 특징이다. 샌디레이크 제공
튀르키예식 모래 커피인 샌디블랜딩. 향이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은 게 특징이다. 샌디레이크 제공

그는 또 원두의 맛에도 신경썼다. 튀르키예 원두는 오래 볶아 탄 맛과 쓴맛이 너무 강한 특징이 있다. 이 대표는 적정 시간 원두 볶는 법을 터득해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샌디블랜딩은 향이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다.

카이막도 튀르키예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카이막은 하루 동안 우유를 적정 온도에서 끓이고 식히기를 반복해 만들어진 일종의 크림이다. 부드러운 식감, 고소한 맛이 특징으로 주로 빵과 꿀을 곁들여 먹는다.

천상의 맛이라고 불리는 카이막.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샌디레이크 제공
천상의 맛이라고 불리는 카이막.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샌디레이크 제공

이 대표는 카이막과 함께 먹는 빵과 꿀을 한국식으로 바꿨다. 딱딱한 빵을 사용하는 튀르키예식 대신 한국인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식빵과 바게트를 내놓았다. 일반 꿀이 아닌 벌집 꿀을 이용하는 것도 독특하다. 농축된 벌집 꿀은 씹을수록 좀 더 진득한 맛을 낸다.

이 대표가 한국식으로 변형한 샌디블랜딩과 카이막은 현지인으로부터 맛을 인정받았다. 그는 "교환학생, 대구에 사는 튀르키예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카이막과 샌디블랜딩 커피를 맛보고 현지에서 먹는 것보다 부드럽고 맛도 있다고 하신다"고 말했다.

◆ 어떤 메뉴든 평균 이상의 맛

샌디레이크 이갑서 대표가 드리퍼를 사용해 원두 가루를 걸러내고 있다. 샌디레이크 제공
샌디레이크 이갑서 대표가 드리퍼를 사용해 원두 가루를 걸러내고 있다. 샌디레이크 제공

샌디레이크는 샌디블랜딩(5천원)과 카이막(6천원)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들 메뉴 못지않게 맛있는 디저트가 많다.

잠봉카이막(8천원)이 그중 하나다. 잠봉카이막은 잠봉뵈르를 변형한 브런치 메뉴다. 잠봉뵈르에는 보통 얇게 저민 햄, 신선한 야채 그리고 버터가 들어간다. 그러나 잠봉카이막은 카이막이 버터 자리를 대신한다. 카이막은 버터와 달리 입 안에 넣었을 때부터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맛을 한층 더 고소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프렌치토스트(8천원)도 특별하다. 샌디레이크에서는 일반 토스트와 다르게 허니브레드 토스트 중간을 파낸다. 그 안에 크렘브뤨레를 넣는다. 바삭한 토스트 식감과 크렘브뤨레의 달콤한 커스터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음료는 여러 향을 입혀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티 메뉴(5천원)에는 '마리아쥬 마르코폴로'라는 프랑스 홍차를 섞어 쓴다. 달콤한 과일 향과 좋은 꽃 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더치 커피 메뉴(5천원, 5천500원)에는 오크칩을 넣어 나무 향을 입힌다. 이는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

자몽에이드와 레몬에이드(각 5천500원)는 과일청을 사용해 과육 맛을 살린다. 경주에서 대구로 여행을 왔다는 강은하(22) 씨와 김예지(22) 씨는 "샌디블랜딩이 유명하지만, 커피를 즐기지 않아 자몽에이드를 시켰다. 알갱이가 씹히면서 과일의 진한 맛이 난다"며 "카이막을 맛보기 위해 방문했지만, 자몽에이드 때문에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손님들이 '샌디레이크에 가면 맛과 분위기가 평균 이상은 한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굳이 검색해 보지 않아도, 찾아오기 만만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카페로 남았으면 한다"며 "그런 만큼 지금의 맛과 서비스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샌디레이크 2층에는 양옆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중동풍 문양의 창문을 볼 수 있다. 홍수현 기자
샌디레이크 2층에는 양옆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중동풍 문양의 창문을 볼 수 있다. 홍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