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다른 사람이 버린 운 줍는 겁니다

입력 2023-07-07 14:22:49 수정 2023-07-07 18:56:19

정정순 영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정정순 영남대 사범대학 교수
정정순 영남대 사범대학 교수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종종 '만다라트'라는 그림을 이용한 과제를 내곤 한다. 만다라트(madalart)는 불교 용어인 만다라(madala)와 기술을 의미하는 아트(art)가 합쳐진 말로, 한가운데 자신의 관심사나 목표 등을 써 놓고, 그와 관련된 지식들 혹은 목표 달성에 필요한 계획들을 꽃잎 모양으로 펼쳐진 네모 칸에 채워 넣는 방식으로 주로 활용된다.

만다라트가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일본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29)의 역할이 크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 투수이자 타자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도 꽤 많은 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검색을 해 보면 고등학교 때 그가 수기로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8구단 드래프트 1순위'가 목표였던 그는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멘털, 스피드(160㎞/h), 인간성, 운, 변화구'라는 여덟 영역에서 실천해야 할 일들을 그의 만다라트에 상세하게 적었다. 예를 들면, '제구'라는 영역에서는 '인스텝 개선, 몸통 강화, 축 흔들지 않기, 몸을 열지 않기, 릴리즈 포인트 안정' 등을 써 놓았다.

내가 그의 만다라트에서 특히 인상 깊게 본 것은 '운'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운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하지,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신화에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알려진 포르투나(Fortuna) 여신을 그린 중세 시대 판화를 보면, 어디로 구를지 알 수 없는 둥근 공 위에서 중심을 잡으면서 눈을 가린 채 아무에게나 행운의 금화를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행운(혹은 운명)이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으며, 예기치 않은 형태로 우연히 찾아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타니 쇼헤이는 '운' 또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관리해야 할 세부 영역으로 설정하고,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부실(部室) 청소, 물건 소중히 쓰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긍정적 사고' 등을 그 실천 항목으로 써 놓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된 후에도 여전히 마운드에서 쓰레기를 보면 되돌아가 줍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운'에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일까? 오래전 이야기다. 내가 아는 한 대학생은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인상이 좋은 그는 아마 성실하게 일을 했을 것이고, 주유하러 오는 차주들에게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사도 곧잘 했을 것이다. 몇 번을 이 주유소에서 주유했던 한 차주가 어느 날 갑자기 차에서 내리더니, 자신은 약사인데 여기 아르바이트 말고 자신의 약국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냐고 즉석에서 제안을 했다. 물론 여러 조건이 훨씬 좋았으니, 요즘 말로 하면 '꿀알바'에 해당하는 것이다. '운'이라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내 삶의 손바닥 안에서 내가 조금은 어찌해 볼 수 있는 범주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타니 쇼헤이는 그의 저서에서 쓰레기를 줍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겁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아름다운 말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 대한 어떠한 작은 비난의 마음도 없으며, 쓰레기를 줍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어떠한 작은 과시욕조차 없다. 설령 포르투나 여신이 발 밑의 둥근 공을 자신의 의도대로 굴릴 수 있게 되어 그에게 행운의 금화를 뿌린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