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사이렌: 불의 섬’, 멋진 여성들의 생존 서바이벌

입력 2023-06-14 11:04:12 수정 2023-06-15 17:44:39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 여성들의 맨몸 생존 서바이벌

'사이렌: 불의 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몸과 몸이 부딪친다. 도끼로 장작을 패고, 삽질로 우물을 파며, 무거운 깃발을 들고 갯벌을 달린다. 익숙한 생존 서바이벌의 풍경이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은 그 주인공이 여성들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새롭게 다가온다.

◆여성들의 생존 서바이벌

'불의 섬'이라 불리는 섬으로 저마다의 직업군으로 나뉜 여섯 팀이 썰물에 드러난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제복만 봐도 이들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노란색 제복을 입은 소방팀, 파란색 제복의 경찰팀,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팀, 군복에 군장까지 한 차림의 군인팀, 운동복 차림의 운동선수팀, 보호장구를 쉽게 착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차림의 스턴트팀이 그들이다.

그들이 등장하면서 저마다 자신들의 일을 소개하고 그것이 서바이벌에서 어떤 강점을 갖는가를 어필한다. 예를 들어 소방팀이 그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드러내며 특히 사이렌 소리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적응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거나, 유도, 클라이밍, 카바디, 여자씨름 선수로 구성된 운동선수팀은 저마다 운동 특성에 맞는 강점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강점들은 불의 섬에서 펼쳐지는 서바이벌에서도 빛을 발한다. 기지전이 시작되는 사이렌이 울리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작전에 뛰어드는 소방팀의 모습이 두각을 나타내고, 운동선수팀의 클라이밍 선수 김민선은 누구도 오르지 못할 벽을 타고 올라가 다른 팀 기지 지붕에 숨겨둔 깃발을 차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하지만 등장과 함께 보여준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해양경찰청 형사기동대 출신의 이슬이다. "남경들은 '형사님, 형사님' 하는데 저한테는 '아가씨'"라고 한다며 그는 "아가씨가 아니고 형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는 이들이 이 특별한 생존 서바이벌에 나오게 된 중요한 동기를 보여준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생존 서바이벌이고 끝까지 살아남아 우승을 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직업군이 주로 남성들의 영역처럼 치부되고, 그래서 존재하는 차별적인 시선을 깨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다. 소방관이나 경찰, 군인 등등의 직업군에도 성별과 상관없이 똑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멋진 여성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여성들의 생존 서바이벌은 '피지컬' 요소들을 기본 밑그림으로 삼았다. 시작과 함께 치러진 깃발 가져오기 미션은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가는 갯벌을 통과해 무려 80kg이나 되는 깃발을 팀원들이 함께 들고 돌아오는 것으로, 그만한 체력과 야전의 노하우가 없으면 버텨내기 힘든 미션이다.

체력적으로는 늘 관리되어 있는 운동선수팀이 가장 강력할 것 같지만, 갯벌이라는 환경에서는 역시 그 노하우가 분명한 군인팀의 저력이 두드러진다. 체력과 야전 노하우만큼 중요한 '악으로 깡으로' 정신도 빼놓을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첫 번째 미션을 통해 '사이렌: 불의 섬'이 보여줄 생존 서바이벌이 웬만한 남자들도 버텨내기 쉽지 않은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드러낸다. 그리고 이건 여성이 피지컬에 있어서 어떤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사이렌: 불의 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생존 서바이벌, 남성의 전유물 X

사실 이 섬 하나를 배경으로 하는 생존 서바이벌은 여러모로 '강철부대'를 떠올리게 한다. 팀으로 나뉘어 치르는 생존 서바이벌이라는 점이 그렀고, 기지전과 아레나전으로 나뉘어 치러지는 대결도 마치 '강철부대'의 메인 미션과 베네핏을 두고 벌이는 사전 미션의 성격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다.

하지만 여기에도 차별점은 있다. '사이렌: 불의 섬'의 메인 미션에 해당하는 기지전은 자신의 기지를 지키고 다른 팀의 기지를 차지하기 위한 서바이벌전으로서 깃발을 빼앗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불의 섬에 각각의 기지를 선택한 팀들은 자신들의 깃발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숨기고 다른 팀의 깃발을 빼앗기 위해 스파이전 같은 정보전과 다른 팀과의 연합 같은 전략, 전술을 구사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도 팀별 직업군의 특성이 등장한다. 경찰팀은 마치 잠복근무를 하듯 첫날 밤부터 다른 기지들의 위치와 동선을 파악하려 하고, 군인팀은 다친 이들을 치료해주는 텐트를 찾아가 치료 기록을 통해 다른 팀의 부상자를 파악하는 정보전을 펼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소방팀과 군인팀의 팽팽한 대결구도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각각 다른 팀들과 연합함으로써 갈수록 기지전은 양자 대결의 양상을 띤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기지전이 대결의 순간 그 자체보다는 그 전까지 치열하게 물밑에서 이뤄지는 정보전과 심리전의 연속이라면, 강력한 베네핏을 두고 벌어지는 아레나전은 눈앞에서 이들의 피지컬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통나무 장작 30개를 패고, 그걸로 불을 붙인 후 자신의 불을 지키고 다른 팀의 불을 소방호스로 끄는 아레나전은 '사이렌: 불의 섬'에 가장 어울리는 미션이었다.

부상을 당한 소방팀의 김현아 팀장을 대신해 통나무 장작 30개를 혼자 다 패버리는 막내 정민선의 헌신이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며 상의를 벗어던지고 장작 30개를 패버리는 군인팀 강은미의 '악'이 보기만 해도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대결을 보여줬다면, 불을 피우는데 능수능란한 군인팀과 불을 끄는데 최적화된 소방팀이 맞붙는 대결은 그 직업과 연결되면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도끼로 문을 깨부수고, 나무를 타고 오르고, 맨손으로 벽을 기어오르는 이들의 피지컬도 그렇지만, 한번 연합을 맺은 팀과 보여주는 의리나 의외로 센 팀을 선택하고는 "그게 멋있지 않냐"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성차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멋짐'이 폭발한다.

'사이렌: 불의 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상대적으로 약했던 기지전

물론 '사이렌: 불의 섬'에도 남는 아쉬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아레나전처럼 피지컬 대결을 벌이는 것이 훨씬 직관적인 재미를 준 반면, 기지전은 치열하게 심리전과 정보전을 펼치긴 하지만, 막상 사이렌이 울리고 벌어진 대결은 순식간에 승패가 결정되고 그래서 다소 허무한 느낌을 줬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최종 우승팀이 결정된 후에 남는 찜찜함은 기지전 같은 서바이벌 요소가 아레나전처럼 분명한 승부를 보여주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이렇게 된 데는 저마다의 영역에서 만만찮은 피지컬을 가진 여성들을 모았지만, 제작진 역시 반신반의한데서 나온 주저함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지난 4월 넷플릭스가 주최했던 '넷플릭스 예능 마실' 행사에서 '사이렌: 불의 섬'의 이은경 PD는 자신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이들의 피지컬 대결에 적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기지전을 피지컬 대결보다는 작전을 통한 전략전술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또 깃발을 뺏는 방식으로 꾸려 놓은 건 다분히 이들을 배려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런 배려가 과연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의 피지컬 능력과 대결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여성들이 벌이는 피지컬 생존 서바이벌 자체가 처음인 제작진들이 겪은 일종의 시행착오에서 생긴 일일 게다. 만일 향후 시즌2로 돌아오게 된다면 아레나전만큼 흥미진진한 기지전의 대결을 좀 더 피지컬적인 요소에 맞추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해도 충분한 신체적 능력을 갖춘 멋진 여성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걸 이 프로그램이 이미 증명해 보여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