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선의 개념-동양과 서양의 차이

입력 2023-05-31 11:12:29

신경애 화가

신경애 화가
신경애 화가

해가 쨍한 날은 보통 날씨가 좋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도 날씨가 좋다고 말하고 싶은 요즘이다. 비 내리는 풍경화에서 화가는 선을 잘 써야 한다. 사실 비는 대기 중의 수분이 응결하여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으로 그리면 비가 내리는 모습을 잘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양화에서는 선이 중요하다. 그러면 서양화에서는 어떤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개념에 관한 이야기다.

회화에서 점, 선, 면은 기본 조형 요소다. 조형 요소란 형태를 이루는 것으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요소, 말 그대로의 의미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된다. 과연 점으로 스케치하는 화가가 있을까. 대체로 화가는 형태를 그릴 때 선을 긋는다. 즉, 화가의 형태 파악은 점보다는 선을 통해 성립된다. 선은 형태를 이루는 최소한의 단위이다.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선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장미에서는 복잡한 방향으로 꺾이는 꽃잎의 선과 양쪽으로 뾰족한 타원형 나뭇잎의 톱날 같은 선을 볼 수 있다. 이 모두 장미라는 사물의 윤곽선이다.

하지만 선은 회화의 세계(2차원)에서만 존재한다. 우리가 읽는 윤곽선은 장미 꽃잎이나 나뭇잎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윤곽선은 실재하는 선이 아닌 사물의 내부와 외부 색의 차이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색의 차이가 없으면 우리 눈은 선(형태)을 읽을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으려면 초점을 맞출 수 있어야 하고, 초점 맞추기는 어떤 읽을 수 있는 단서(색의 차이)가 명료할 때 가능하다. 놀랍게도 우리 눈은 빛 없이 완전히 깜깜해도 볼 수 없지만, 온통 빛으로 둘러싸여 있어도 볼 수 없다. 안개 속에서 거리 감각을 잃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우리의 형태 인식은 색의 도움을 받는다.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건 이렇게 없는 선을 색을 통해 보는 일이다. 화가는 실재하지도 않는 선을 보고, 색으로 선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 그런데 동양화에서 선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 선은 동양화에서 중요한 기운생동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반면 서양화에서 선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선은 서양화에서 중요한 입체감을 해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동양화에서는 선을 세워야 하고 서양화에서는 선을 지워야 한다. 요즘 서양화는 선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전통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비단 선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여러 개념의 차이가 그 문화의 미술에, 화가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개념, 사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는가 하는 것은 미술의 토대다. 초연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특정 지역에 있으면서 전 세계와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점점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희석되고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문득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서양식의 교육을 받는 나는 누구인지 의문이 든다. 나는 선을 세워야 할까, 아니면 선을 지워야 할까. 상반되는 개념의 양극단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는 게 화가의 숙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