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가사 보존 처리 현장 가보니…한땀 한땀 수놓은 125개 도상 빼곡
"자수 옆으로 1㎝ 정도 틈이 있는 것 보이시나요? '통문'이라고 해요. 부처님이 지나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뒷면을 볼 때 더 잘 보이죠."
지난 17일 오후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안보연 학예연구사가 보물 '자수가사'(刺繡袈裟)의 뒷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빨강, 초록, 검정 등 다양한 색실을 사용해 정성껏 수놓은 부처와 보살, 경전의 뒷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보물로 지정된 자수가사와 보존처리 현장을 공개했다. 산스크리트어인 '카사야'(Kasaya)에서 음을 딴 가사는 승려가 입는 예복을 뜻한다.
서울공예박물관이 소장한 이 가사는 자수와 보자기를 세계인이 공감하는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고(故)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이 수집한 뒤 기증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무늬가 없는 흰 비단 바탕에 부처, 경전, 존자 등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보물' 125개의 도상을 수 놓았는데, 승려가 실제 착용하는 목적보다는 예불을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가사가 센터를 찾은 건 바로 곰팡이 때문이었다.
액자에 넣어 마치 그림처럼 보관해오던 가사 곳곳에는 색이 바랜 흔적이 있었고 액자 뒷면 일부가 손상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 총 5종의 곰팡이와 1종의 박테리아도 확인됐다.
안 학예연구사는 "처음 유물이 들어왔을 때는 유리가 아니라 폴리염화비닐(PVC) 필름이 부착돼 있었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고 항온·항습이 이뤄지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은 문화재위원회에서 현상 변경을 허가받은 2019년 4월 23일 이후 본격적인 '치료'에 나섰다.
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유물을 꺼내 대전까지 무사히 이동시킨 뒤, 액자와 PVC 필름을 벗겨냈다. 자수 뒷면에 7겹가량 덧대어 둔 배접지(褙接紙)를 떼어내는 데만 2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안 학예연구사는 "전통 한지를 겹쳐 덧댄 유물은 수분을 공급한 뒤 천천히 떼어내면 되는데, 이 유물은 전통 풀 외 다른 접착제를 쓰고 배접지도 툭툭 끊겨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각종 실험과 분석을 끝낸 유물은 이달 23일 대중에게 공개를 앞두고 있다.
액자 속 그림이 아니라 실제 의복으로 되살리기 위한 보존 처리 과정 1천492일의 여정을 공유하고자 기획한 행사다. 자수가사 실물이 공개되는 건 1979년 보물 지정 이후 약 44년 만이다.
사흘간 열리는 공개 행사는 가사에 수놓은 도상 125개의 의미를 부각해 총 125명을 초대할 예정이다.
안 학예연구사는 "복식 유물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자수가사는 옛 전통 자수 기법과 색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직물류 보존 처리 기법과 실험은 거의 다 적용한 듯하다"며 "작업을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한다. 여러 노력과 고민이 담긴 공개 행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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