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애 화가
4월 초에 심은 토마토가 다 죽었다. 성급하게 질소 비료를 준 탓이다. 아버지는 농부였지만 나는 농사에 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농부는 식물과 땅의 성질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러면 화가는 어떤가. 화가의 일, 그중에서도 재료(물질)를 다루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500년 전 당시 서양의 화가들은 물감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물감은 안료(顔料)와 용매를 적당량 섞어 놓은 것이다. 물감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화가들은 재료의 성질을 파악했다. 예컨대 템페라(tempera)는 달걀 노른자, 무화과즙, 벌꿀 등의 용매를 섞어 그린다. 이러한 용매는 건조시간이 짧고 고착성이 약하기 때문에 화면 위의 색 덩어리가 쉽게 탈락한다. 그래서 화가들은 용매의 적절한 배합, 이를테면 건조 시간을 늘이기 위해 벌꿀을 더 섞는다거나 하는 식의 연구를 해야 했다.
한편 템페라의 특성은 해칭(hatching) 기법을 발달시켰다. 해칭은 무수한 가느다란 평행의 선을 통해 형태(명암, 색조의 변화)를 그리는 기법이다. 이 방법은 숙련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템페라는 유화의 등장으로 급속도로 쇠락했다. 템페라의 운명에 그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한몫했다. 재료와 그리는 방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수채화를 유화처럼 그리기는 힘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가는 재료의 한계를 알고 그것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재료 공부는 화가의 핵심적인 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가들,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는 그리기뿐만 아니라 물감 제조전문가이자 재료 연구가이기도 하다. 대가들은 공방을 운영하면서 제자에게 자신이 개발한 그의 비법을 전수했다. 모르긴 해도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제자는 재료를 다루는 스승의 몸짓을 보고 흉내 내어 배웠을 것이다. 이렇게 스승을 모방하는 공방 중심의 도제식 교육이 전문 미술인을 양성하는 교육 방법으로 정착되어 18세기 미술 아카데미로 이어졌다. 내가 대학을 다닌 90년대 한국 미술교육에서는 기초 혹은 재료기법을 중시하는 아카데믹한 교육이 환영받지 못했다. 화가가 기능공처럼 여겨지는 데 거부감도 있었고, 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교육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카데믹한 교육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평가나 미술 재료학의 관심은 나가사키대학에서 형성되었다. 일본인은 진심으로 장인을 존경한다. 나는 겉핥기식으로 나가사키대학에서 몇 가지의 재료 기법을 공부했다. 달걀 비린내, 식초 냄새를 견디며 템페라를 배웠다. 재료기법과 상관없이 지금은 물감을 만들어 그림 그리는 화가가 드물다. 일부 화가들은 물감을 스스로 제조해야 하는 자기 나름의 이유를 찾아내고 있지만, 그 외에는 굳이 그런 수고를 할 당위성이 없기 때문이다. 비단 물감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떤 재료든 손에 들어오는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고 생각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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