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이 넘은 고령의 환자가 숨을 헐떡이며 따지듯이 물었다. "아니, 왜 이렇게 숨이 찬지 해결을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수년 전부터 외래를 다니다가 한동안 뜸했던 환자는 최근 다시 숨이 차다며 외래를 방문하였다. 환자를 진정시키고 숨이 찬 원인을 찾아보자고 말한 나는 청진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심장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설명드렸다. 결과는 예상대로 중증 대동맥판 협착증이었다. 몇 년 사이 대동맥판막 협착이 진행된 것이 원인이었다. 이런 경우 새로운 판막으로 교체하는 판막치환술을 해야 한다.
"수술을 해야 하나요? 이 나이에? 가슴을 열고?" 혼자 외래를 방문한 환자는 자신 없다는 듯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큰일이네, 수술은 하기 무섭고, 숨은 너무 차서 죽을 것 같고. 할 수 없지요, 죽든 살든 수술을 해야 되면 해야지요." 나는 서둘러 환자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니요, 환자분. 연세도 많으시고 수술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가슴을 열 필요는 없으세요. 허벅지 혈관을 통해 대동맥 판막을 교체하는 시술을 하면 됩니다." 나는 수술 대신 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을 하면 된다고 환자를 안심시켰다. 환자는 흔쾌히 동의를 했고 당장 입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은 반드시 심장통합진료팀의 회의를 거쳐서 승인을 받아야 했다. 기다리는 몇 일 사이 환자는 얼굴이 붓고 증상도 악화되었다. 환자는 숨이 차서 간신히 말했다. "교수님, 저 나이도 많고 오래 살았지만, 더 살고 싶습니다." "네, 오래 사셔야죠. 시술을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시술은 쉽지 않다. 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은 수술보다는 위험도는 낮지만 큰 혈관을 통해서 여러 가지 기구들을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혈관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고위험 고난도 시술이다. 시술 도중 대퇴동맥에 상당한 출혈이 발생하여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이 저하되는 어려움을 겪은 끝에 성공적으로 시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국의 고령화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고령에서 발생하는 대동맥판 협착증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동맥판 협착증은 심부전의 주된 원인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수년 내로 사망할 수 있는 암보다 무서운 질환이다. 따라서 치료인 대동맥판막치환술은 필수의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령의 경우 수술 위험도가 높아 최근에는 가슴을 열지 않고 대퇴동맥을 통해 판막을 교체하는 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이 선호되고 있다. 환자는 당연히 수술보다는 시술을 선호한다. 하지만, 환자가 이 시술을 원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흉부외과, 마취과, 순환기내과, 영상의학과 의사 등이 참여하는 심장통합진료팀의 대면회의를 통한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시술이 가능하다. 또한, 시술비용도 비합리적이다. 같은 시술을 하는데 고령의 환자는 전체 시술비용의 5%만 내면 되지만, 고령이라도 80세가 되지 않는 환자는 수천만원을 부담해야 해서 수술 비용인 수백만원에 비해 차이가 크다. 시술에 10여 명의 의사가 참여하지만 시술료는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어 시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은 적자가 되는 환영 받지 못하는 시술이며, 합병증이 발생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해서 의료진이 떠안아야 할 위험도 큰 고위험 고난도 시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지만 저평가된 필수의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런 비합리적인 구조의 개선을 위한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부터 '필수의료 강화'를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 시대 필수의료 대책이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고령의 환자는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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