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여론에 나타난 민심 이반

입력 2023-05-10 14:49:13 수정 2023-05-10 19:51:58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정치권에서 여론조사를 대하는 태도는 대체로 3가지로 분류된다. 민심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변명하거나 부정·무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국정 운영 방식과 정국의 해법도 달라진다.

가장 일반적인 태도는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민심에 따라 순리대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서경(書經)에 나오는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가르침을 따르는 것으로 고대 중국의 선정(善政)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후 맹자는 인정(仁政)을 강조하면서 민(民), 사직(社稷), 군(君) 순으로 중함을 매기고 이를 근거로 군주의 교체도 가능하다는 급진적 민본주의(民本主義)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민심관은 유교국인 조선시대에도 나타난다. 세종대왕은 재위 12년(1430년) 백성의 이해관계가 걸린 세금을 매기는 방법을 결정하면서 17만2천648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였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공식 여론조사라 볼 수 있다.

오늘날 민본주의는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화의 동력이 되었고,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심은 천심이다' '천하를 얻으려면 민심을 얻어야 한다' '민심은 바다와 같아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금언들은 정치적 상식으로 여겨졌다.

정치에서 이러한 민심을 읽는 방법은 주로 다음의 세 가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언론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각각 입장이 있음에도 공정과 중립을 내세운다. 특히나 언론이 다른 목소리를 크게 낼수록 그렇다. 그러다 보니 국민과 정치인은 혼란스럽다. 이는 진보나 보수, 정책적 입장을 밝히는 미국 등의 언론과는 다른 점이다.

두 번째 방법은 직접 국민의 민심을 듣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 민심 수렴 방법은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하는 정치인의 심리로 인해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민심과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들어야 할 민심보다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지지자나, 정치적 시민을 대상으로만 소통함으로써 더더욱 편향성이 강화되어 수구적 사고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론조사로 민심을 읽는다. 그 이유는 과학적 방법이라 생각해서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도 각각 결과가 다르고 일·주 단위로 지지율이 변한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여론조사가 민심을 읽는 방법이 아니라, 유리한 결과만 끌어다가 정쟁을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여론조사도 극단적 조사 결과를 제외하고, 평균치로 읽으면 그래도 그 나름 민심에 가까운 근사치로 유용하다.

최근 여론조사 중에서 민심을 읽는 데는 중요하지만 언론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지표가 있다. 바로 정당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무당층과 이념 성향상 중도층이다. 먼저 무당층은 조사기관마다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증가 추세다. 한길리서치 5월 정기조사의 무당층이 27.9%, 갤럽 5월 1주 조사는 28%(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로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과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당시 보수 정당인 자유민주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어야 했을 때, 그 당시 무당층이 40% 전후였음을 감안하면 현재 양당에 대한 민심 이반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음 지표는 현재 보수·진보 양당 구조에서 중도층의 증가다. 한길리서치 5월 2주 조사에서 보수는 32.1%, 중도 38.5%, 진보가 21.4%다. 이는 현 정부 출범 1년 전 5월 조사(보수 40.3%, 중도 35.6%, 진보 18.7%)와 비교해 보면 보수 우위에서 중도 우위로 바뀌었다. 이는 현재 보수와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에 대한 민심 이반을 의미한다.

이러한 민심 이반 지표의 결과 예측은 쉽지 않다. 단지 '민심은 바다와 같아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경구를 감안하면 여(與)나 야(野)나 민심의 경고를 엄중하게 여겨야 할 것 같다. 특히 두 지표 중 정치 이념이 먼저이고 당 지지율은 후에 해당해서 정치 이념이 정당 지지율의 뿌리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무당층의 약 28%보다 중도층이 38.5%나 된다는 점을 더 무겁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