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시인 T.S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대한민국은 5월이 더 잔인한 달인 것 같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어느 한순간도 격렬하거나 숭고하지 않은 때가 없으나 격랑의 근·현대사에서 5월은 특히 그러하기 때문이다. 5·16은 잊혀 가지만 세월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5월 11일은 동학농민군이 황토현에서 첫 승리한 날로 지난 정부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지정한 날이다.
첫날인 1일도 근로자의 날로 전국에서 양대 노총 10여만 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나와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용산 대통령실을 향했으며, 강릉에서는 노조원 한 명이 분신까지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노총이 노동절 집회에 나선 건 7년 만에 처음인데, 이는 올해 26억 원 규모의 정부 국고보조금 지원사업에서 한국노총이 탈락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여러모로 올해 노동계 투쟁이 왠지 심상치가 않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을 발생시킨 5·18과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것도 5월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벌써 40년을 훨씬 넘었고, 노 대통령 사망도 14년째가 되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내듯 그 행태는 계속된다. 당시 계엄령 해제와 야당 정치인 석방, 군부 세력 타도를 외치며 싸웠던 광주 시민들이나 명령에 따라 폭동 진압을 위해 계엄군으로 광주에 내려갔던 이들 모두에게 아직도 치유할 수 없는 큰 아픔이자 우리 현대사의 비극으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5월이 되면 비호남 지역의 많은 국민이 마치 자신들이 역사적 가해자나 채무자가 되는 듯한 묘한 기분으로 5월을 지내는 것 같다.
누구도 이 비극적 사건을 조롱하거나 음해해선 안 된다. 하지만 5·18을 둘러싸고 아직도 남아 있는 국민적 의혹과 불편한 문제를 풀지 않는 한 5·18이 온전히 민주주의 운동이었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의 첫 번째가 5·18 관련 유공자들의 명단 공개이다. 그동안 숱한 의문 제기와 공개 요구에도 유공자들의 이름이 여전히 밀봉된 채 공개되지 않고 있다. 특히 1980년 5월 당시 광주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5·18 유공자로서 대우를 받고 있거나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 확인할 길이 없으나 사실이면 왜 그럴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혹시 민주화운동을 팔아먹는 자격 미달자들이 대거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둔갑해 국민의 혈세를 축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다. 5·18 민주화운동이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라면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응당 마땅한 것이리라.
또한 5·18 관련 유공자 명단을 지자체인 광주시가 관장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시대착오적인 행정이다. 벌써 40년 세월이 지났고 국가보훈처도 이제 장관급으로 격상된 만큼 5·18 관련 유공자 명단도 일반 보훈 업무처럼 국가보훈처가 관장하도록 이관해야 한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5·18 관련 허위사실 유포를 금지한다는 명분으로 5·18과 관련해서 말을 잘못하면 형사처벌까지 하고 있는데 이건 아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오히려 퇴색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인 6·25전쟁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북침설을 제기하는 주장이 엄연히 있고,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폭침돼 46명의 젊은 용사가 억울하게 전사한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해서도 좌초설이 나돌고 있지만 이를 처벌하지 않고 있는데, 단지 5·18에 대해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을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루빨리 이 법의 폐지가 필요하다.
특정 '역사적 사건'에 정치적 제한의 틀을 설정해 놓음으로써 그 사건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거나 그 의미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토론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법률로 제한하는 행태가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바람직스럽고 정당한 모습인가? 지금 당장이야 주도 세력의 막대한 국회 의석수로 그러한 입장을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언젠가는 역풍을 맞이하게 되리라 단언한다. 어떤 식으로든 '역사'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 만약 5·18의 진실과 의미를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고 폄훼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식과 품격으로 또 정확한 정보로 그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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