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 K다큐 시대 여나
우리에게 다큐멘터리는 예능, 드라마 같은 타 장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한 영역으로 치부돼왔다. 지상파 개념으로 주로 대중들이 접한 다큐멘터리란 TV에서는 교양 정도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왜곡이라는 걸 '국가수사본부'는 보여준다.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제작
끔찍한 범죄를 추적하는 형사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가 실제로 자주 접할 일이 별로 없는(없어야 하는) 형사들의 이미지는 대부분 범죄스릴러 같은 허구가 만들어낸 가상이다. 그 허구의 이미지는 '범죄도시'의 마동석 같은 슈퍼히어로이기도 하고, 때론 '끝까지 간다'에 등장하는 부패한 형사이기도 하다. 물론 '형사록'의 이성민이나 '모범형사'의 손현주 같은 보다 현실적인 형사들의 이미지도 있지만, 그 이미지들은 말 그대로 작품이 특정 서사를 위해 어느 한 부분을 과장하기도 해 만들어낸 허구다. 그래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허구 속에서 이러한 형사 캐릭터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서사 안에서 느끼는 몰입감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돌아보면 실제 형사들과의 간극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배정훈 PD가 진두지휘해 만든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가 보여주는 형사들은 실감 자체가 다르다. '본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모두 실제임을 밝힙니다'라고 고지하면서 시작하는 '국가수사본부'는 실제 현장에서 뛰는 강력계 형사들이 등장한다. 물론 끔찍한 살인사건부터 강도, 사기사건은 물론이고 보이스피싱 같은 지능범죄에 이르기까지 매회 소개되는 다양한 사건들도 진짜이고 몇날 며칠을 잠복해 겨우겨우 체포한 용의자들도 모두 진짜다.
그런데 허구가 아닌 진짜 사건을 범죄현장부터 용의자 검거의 순간까지 추적해 영상에 담아낸 다큐멘터리는 때론 드라마틱한 추적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너무나 감정적으로 슬픈 사연이 되기도 하며 때론 범인을 잡고픈 형사들의 간절한 갈망이 담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허구가 만들어낸 이미지로서의 형사가 아니라, 실제 형사들의 입체적인 초상이 그려진다. 때론 슈퍼히어로 같지만 때론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이 이들에게 겹쳐진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에피소드로 소개된 '친절한 이웃'편은 엄마와 딸에게 약을 먹이고 살해한 용의자로서 위층 이웃이 지목됐지만, 끝까지 발뺌을 하는 용의자 때문에 증거를 찾기 위해 뛰고 또 뛰는 형사들의 간절함을 담았다. 맨홀 뚜껑 아래까지 뒤져 사라졌던 딸의 핸드폰을 극적으로 찾아내기도 하고, 인근 빌라 세대원 200여 세대와 300여 개 금은방을 탐문하기도 하는 형사들은 끝내 자신들의 끈질긴 조사로 구속 결정이 내려지자 그 소회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경찰 관련 영화 중에 '강력3반'이라고 그 대사 중의 하나가, 주인공이 그 동료 형사한테 하는 얘기가 범인이 너무 잡고 싶으면 눈물이 난다는 대사가 있거든요. 그 때의 그 영화 대사가 어떤 느낌인지 이 사건을 하면서 저도 느꼈거든요."
◆현실판 '강력3반'인 줄
두 번째 에피소드인 '방망이와 작대기'편은 평택경찰서 강력2팀이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해가는 과정을 담았는데, 한 편의 리얼한 형사 추적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폭행 상해 피해자를 수사하다가 현장에서 마약을 발견하고, 그 마약을 유통한 이들부터 줄줄이 찾아 올라가 이른바 상선들까지 검거하는 흥미진진한 추적기가 담겼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을 통해 평택경찰서 강력2팀의 형사들이 마치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건 실제 그 형사들이 가진 성격이기도 하지만, 이를 후시 편집과 인터뷰 등을 통해 적절히 극대화하는 연출적 요소들을 가미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실제 현장에서의 기록이 주는 실감은 그 어떤 범죄수사물보다 강력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즉 범죄스릴러에서는 문을 박차고 들어가 범인을 체포하는 장면은 하나의 클리셰처럼 여겨지지만, '국가수사본부'는 그것이 실제 상황이기 때문에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광경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자극적인 현장을 보여주기보다는 우리가 범죄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는 형사들의 든든한 면모를 그려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배정훈 PD는 '국가수사본부'가 '그것이 알고 싶다'와 다른 관전 포인트로 현장에서 뛰는 형사들의 리얼리티를 꼽은 바 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이나 의혹이 남는 사건들을 주로 다루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형사들은 종종 부정적인 면들이 부각되곤 했지만, '국가수사본부'는 정반대로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형사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담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형사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는 것.
10회 '거미줄 속 숨바꼭질'에서 소개된 금은방 털이범을 검거하는 과정은 현재의 범인 추적에 CCTV가 얼마나 중요해졌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돋보인 건 형사들의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용산에서 강남터미널로 또 원주까지 갔다가 전주로 가면서 추적을 따돌리려는 용의자를 CCTV에서의 동선을 따라가며 끝내 검거했는데, 그 동선들을 지도 위에 이어붙이면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엉켜있을 정도였다. '국가수사본부'는 이 거미줄 같은 도주로를 끝내 추적하는 형사들의 집념을 담아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는 흥미진진함과 더불어 편안함을 주면서 동시에, 범인은 끝내 붙잡힌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능·드라마보다 센 다큐
'국가수사본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서, 1993년부터 99년까지 방영됐던 '경찰청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당시에는 리얼리티라고 해도 실제 사건을 재연 방식으로 풀어서 보여주고 담당 형사들이 인터뷰를 통해 그 사건의 전말을 풀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지상파로서 담을 수 있는 '리얼의 영역'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웨이브 오리지널로 제작된 '국가수사본부'는 실제 사건을 실제 현장 기록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OTT 시대의 달라진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사실 범죄는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각광받는 소재가 됐다. '알쓸범잡'이나 '용감한 형사들', '스모킹건', '블랙' 등 범죄 소재의 자극적인 이야기들은 예능의 스토리텔링 트렌드와 맞아 떨어져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큐멘터리들이 이 영역을 끌어오고 있다. '국가수사본부'는 물론이고 넷플릭스에서 소개된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레인코트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같은 다큐멘터리가 그것이다. 스토리를 통한 허구나, 토크 방식이 아닌 실제 상황들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드라마나 예능보다도 그 극적 힘이 세다고 볼 수 있다.
'국가수사본부' 같은 형사 리얼리티 다큐멘터리가 가능해진 건 보다 소재나 표현에 있어 자유도가 허용되는 OTT 플랫폼 덕분이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를 했던 SBS 배정훈 PD나 'PD수첩'을 했던 MBC 조성현 PD가 그들이 각각 만든 '국가수사본부'와 '나는 신이다'를 자사 플랫폼이 아닌 웨이브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건 이 변화가 어떤 물꼬의 성격을 띤다는 걸 예감케 한다. 그간 지상파 같은 레거시 미디어 교양의 틀에 갇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다큐의 소재나 표현들이 이제 OTT를 통해 분출되어 나올 거라는 것이다. 이들 다큐멘터리들의 물꼬를 통해 과연 K다큐의 시대 역시 열리고 있는 것일까. 향후 OTT에 등장할 다큐멘터리들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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