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불 현장의 적십자 봉사자들께

입력 2023-04-28 14:57:44 수정 2023-04-30 18:05:36

김재왕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회장

김재왕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회장
김재왕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회장

최근 강릉 산불이 530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키고 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일상을 앗아갔다. 이에 대한적십자사는 이재민대피소에서 긴급구호세트를 제공하고 급식 및 재난심리회복활동과 함께 이동샤워차량과 세탁차량을 배치해 이재민의 생활을 지원했다.

전국 산림의 21.2%가 있는 경북 또한 산불 재난에서 안전하지 않다. 최근에도 상주와 군위, 영주 등지에서 산불이 났고,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으나 안심할 수 없다.

지난달 3일 발생한 영주 평은면 산불 당시 900명이 넘는 산불진화대원들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산림청의 '산불 3단계'까지 발령됐고, 다음 날 아침에야 가까스로 주불을 잡았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사투를 벌였다. 영주 적십자 봉사원 60여 명과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직원들도 저녁부터 다음 날 점심까지 함께하며 산불진화대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진화 작업을 돕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경북적십자사 회장직을 맡기 전까지, 우리 사회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원조받던 최빈국에서 원조를 하는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그 뿌듯함 뒤로는 사회가 양극화하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제삿밥을 나누던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것만 같아 씁쓸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그것이 기우일 수 있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마른 잎 속에 새싹이 숨어 돋듯 우리 사회 곳곳의 수많은 봉사자들을 발견하면서다. 이번 영주 산불 때만 해도 각각 수십 명씩 뭉친 15개 적십자봉사회와 406명의 봉사원이 길면 상당히 긴 시간을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을 도우며 사각지대에서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다.

이들은 평소엔 자발적으로 지역사회 곳곳에서 봉사활동으로 팀워크를 다지다가, 재난이 터지면 지난해 울진 산불, 포항·경주의 태풍 힌남노 때처럼 일사불란하게 현장으로 달려가 훈련된 구호활동을 펼친다. 봉사자들의 거친 손과 환한 얼굴을 보면 '곳곳에 천사들이 이렇게 많이 숨어 있었나' 하는 감동마저 느낀다.

이런 봉사 조직이 없다면 갑작스러운 재난에 어떻게 사람을 동원할까. 동원한들 손발도 맞지 않을 것이다. 일당을 주고 사람을 산들 봉사심에 뛰어드는 사람들만큼 적극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참으로 귀하고 값진 분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이 가진 자비심과 측은지심이 이들을 통해 확산되어 우리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를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인도해 가고 있다는 희망을 확실히 봤다. '선진국' 평가는 경제적인 것만으로 내릴 수 없다. 문화적인 소양,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 등도 중요하다. 대가 없이 자신을 내놓는 분들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고 선진화된 나라로 만든다.

우리 주변에는 사회 곳곳에서 이웃과 세계 시민들을 위하고, 갈라진 우리 사회를 연결하는 접착제와 촉매제 역할을 하는 봉사자들이 있다. 우리는 6·25전쟁의 아픔부터 최근의 코로나19까지 여러 위기에 직면해 왔다. 그때마다 내 일이 아님에도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적십자 봉사원과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인류가 있는 곳에 고통이 있고, 고통이 있는 곳에 적십자가 있다'는 말처럼 재난은 언제든 우리 곁에 찾아올 수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 재난 현장엔 적십자가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적십자 운동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함께해 주셨으면 한다.